데이트가 쉬워, 사랑이 쉬워

사랑은 쉽다 데이트가 어렵지

by 리뷰몽땅

내 이름은 순자다. 내 나이는 스물 셋이다. 나이에 맞지 않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들으면 모두들 파안대소를 한다. 잔뜩 찌푸린 얼굴의 사람들도 웃게 만드는 재주. 그게 바로 내 이름이다.


순자.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나는 절대 순자스럽지 않다. 까탈스럽기가 끝이 없다. 후루룩 짭짭 소리내며 밥 먹는 사람도 극혐하고 아무리 한여름이라도 얼굴에 땀이 번질대는 것도 두고보지 못한다. 하지만 순자가 그런 행동을 보일 때 상대방이 의아해 하는 모습이 한 두번이 아니라 나는 그만 나다움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름이 뭐예요? 아, 순자요. 네? 순자요. 진짜요? 진짜 이름이 순자예요?


그럼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예명을 가지고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외모는 또 절대 순자스럽지 않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생머리도 아니다. 한 번에 눈에 띄는 짙은 레드 브라운에 층층이 잘린 단발머리의 나는 동그랗게 웃는 인상도 아니고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아무 말 안해도 성깔 좀 있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무난한 니트와 치맘 대신 검은 가죽 재킷에 청바지, 그리고 굽 높은 부츠를 신고 다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은 묻는다.


정말, 순자 맞아요? 상상했던 것보다.하하. 되게 힙하시네요


스무살이 되던 해에 나는 개명을 하겠다고 집을 발칵 뒤집어 버렸다. 할아버지는 내 이름에 얽힌 뜻을 하나하나 풀어 주었고 아버지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처럼 강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여자애가 이렇게 순둥순둥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삶이 순탄할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내 인생을 왜 이름 운세로 결론 내려요? 내가 약해 보이면 약하게 사는거고 강해 보이면 강하게 사는거지. 그리고 강하게 사는게 뭐가 나쁘다는 건데. 그냥 이름 바꿀래


아버지는 텔레비전 볼륨을 더욱 키웠다. 대화 종료. 판정패였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혼자 악을 쓰던 나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서 개명 절차라고 검색창에 치다 말고 울컥해서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그게 순할 순이라는 뜻만 있는게 아니야. 순수하다는 뜻도 있고 온전하다는 뜻도 있지. 세상에 치여도 마음은 덜 다쳤으면 하는 뜻이 담겨 있는거란다. 온전한 삶을 살아보라는 뜻이야. 그리고 사람이 원래 센 구석이 있으면 이름이라도 좀 말랑해야 균형이 맞는 법이야.


하지만 이름 때문에 나는 데이트가 정말 어렵다는 말을 3년이나 주구장창 외치고 있지만 가족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순자였으면 평생 순자가 맞다는 이런 궨변이 어디에 있담


딱 한 번, 내 이름에 개의치 않는 남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데이트보다 사랑이 어려웠던 단 한 사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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