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1권을 마치다.

연암은 중국여행기를 썼는데 나는 조선으로 여행을 떠났다.

by 땅콩

일신수필 이후로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열하일기 낭독 모임 하면서 '일신수필'읽을 때 깨우친 게 많아서 아. 이 순간을 기록해놓고 싶어서 목차를 만들었던 것. 그 시점이 지나니 그 흥분이 조금 가셔서 주춤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열하일기는 3권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나는 1권만 제대로 읽는 것도 뜻깊다고 생각한다. 강의를 들어봐도 12주 차 강의 가운데 6주 차, 절반이나 1권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만큼 1권이 재미나, 감동, 내용면에서 가장 크다.(고 말하기엔 2권도 다 못 읽었다.)


자, 지금은 1780년이다.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다스리는 조선에 발을 딱 딛고 그곳에 깃발을 꽂는다. 50년 뒤 신미양요 격전이 있었던 곳이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 덕포진이다.

100년 전 병자호란, 200년 전 임진왜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조망할 수 있게 되면서 납작하던 조선 500년이 툭 튀어 오르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박시백 만화가가 만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그즈음 함께 읽기 시작했다. 학습만화인가? 싶었던 내 편견을 완전히 뒤집은 이 만화책(?)은 자칫 텍스트로 납작해질 많은 왕과 인물들의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빽빽한 글들까지도 꼼꼼히 챙겨 읽게 되었다.


연암에게 '열하일기'는 열하를 목적지로 하는 여행이 아니다.(라고 단언해본다.) 그에게 도착은 없다. 어차피 또 북경으로 조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 조선에 와서 끝나는가? 그 또한 아니다. 그처럼 우리의 삶은 온통 과정뿐이다. 연암이 죽어도 조선은 망국을 향해 가고 있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결과는 사실, 끝없는 과정 속 지나는 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내가 이 역에서 내려놓고 '도착!'하고 외쳤던 지난 여행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오늘날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범람한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이반 일리치 말대로 언어라는 것도 계급이 생겨서 우리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연단에 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 뿐이라는 게 이 시대의 불평등이자 권력이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당시 청나라에도 '문자옥'이라는 게 있어 말 한마디, 글자 한자 잘 못썼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고 조선에도 문체반정으로 일컫는 '검열'이 있었다고 한다. 유학을 기본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학문이 결국 종교가 되어 유교국가가 된 조선이니 그밖에 종교나 학문은 철저히 배척되고 과거도 통과할 수 없었다.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좀 넓게 보고 비판의식을 키워보자라고 외치고 싶었던 연암은 여행지에서 만난 타국인을 통해 옳타쿠나 이참에 하고 싶은 말 실컷 해야지 한 게 아닐까?


연암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마주이야기 들은 생각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여행 기라는 것이 그 당시에 메모도 하겠지만 집에 돌아와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하나하나 정리하며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열하일기 속 인물들의 겉모습과 성격까지 말 한마디까지 세세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돌이켜보건대 아마도 연암은 거기서 보고 느낀 자신의 생각을 가장 큰 '팩트'로 삼고 장소와 인물을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픽션화'해서 약간의 각본 수정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여행기를 쓴 것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나는 그것을 지나친다면 또 하나의 연암을 놓치는 것이겠구나 싶어 화들짝 놀란다. 마침 박수밀 선생님이 강의 도중에 열하를 같이 여행한 다른 관리의 글을 대조하면서 연암의 일정 기록에 약간의 오차가 있다며 나와 같은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연암은 여행에서 돌아와 수많은 책과 자료들을 수집해 인용하고 증명하고, 나열하면서 연암 자신의 입이 아닌 청나라 사람들 입을 통해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글쓰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때 연암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겼으니 노련한 지혜야말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열하일기는 그 당시 엄청난 논란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정조까지 몰래 구해서 읽어보고 버릇없다며 반성문까지 쓰게 할 정도로 대박을 친 작품이다.


우리네 삶이 너무 적나라해서 대놓고 직선으로 호통치는 말에는 감정만 읽고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 소설가는 꾸며놓은 무대장치 뒤에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슬며시 감추어 놓는다. 결국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만이,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만이 무대장치 뒤에 작가가 고통받으며 깨달았던 어떤 것들을 온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된다.


모처럼 창구를 만난 연암의 생각은 열하일기를 통해서 마음껏 행복한 비명을 질러내지 않았을까!

열하일기라는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오히려 조선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만큼 연암 마음속에는 조선 백성을 향한 마음, 조선이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내게 열하일기 1권은 온통 조선 일기 같다.


5주 차에 관내 정사, 6주 차에 막북행정록에서 발견한 글들을 정리해 글을 올리려다 글이 길어졌다.

관내정사는 사신 일행이 만리장성 안쪽인 산해관에 들어와 겪은 일을 헤아린 글인데 연암이 어떤 점포 벽에 걸린 글을 베껴와 실은 유명한 이야기 '호질'이 여기 실려있다. 호질 이야기를 제대로 읽은 것은 처음인데 아, 이건 너무 연암스럽다. 오늘날 학자들이 호질을 연암이 순수 창작한 글이라고 의심할 만큼 지금까지 연암이 갖던 조선 선비를 향한 문제의식과 결을 같이한다.


막북행정록은 만리장성 너머 북쪽에 있는 열하로 가는 일정, 즉 북경에서 열하로 가는 여정을 적었다. 조선 사신 일행의 목적지는 북경이었지만 청나라 황제가 열하에서 지내고 있어서 부랴부랴 급하게 예정에 없던 열하를 가게 된 것이다.

열하일기 1권 낭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11월 여느께, 꿈틀 책방에서. 갈색 조끼가 나다.

이러저러한 뜻깊은 글월을 옮길까 하다가 지우고 열하일기 1권을 마무리하는 글을 쓴다. 열하일기 2권 낭독은 줌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비대면과 대면의 차이는 확실히 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독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건너뛰지 않고 3권 끝까지 꼼꼼하게 같이 읽어나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열하일기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1권만 읽고 2,3권은 읽을 흥미를 곧 잃고 포기하게 되기에 내용의 깊고 얕음을 재지 않고 끝까지 읽어보리라.


2권과 3권은 열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별로 묶었고 인상 깊었던 글동무 또한 따로 묶어서 설명해놓았다.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고, 다시 북경에서 조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단다. 아무쪼록 2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힘이 내게 생긴다면 참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주차_<일신수필>, 인간 자체를 진리화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