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차] 내 시간을 기록하고 색상별로 분류하다

주업무와 부업무? 나의 주요 정체성 인정하기

by 땅콩

처음으로 내 하루를 시간 단위로 기록을 해봤던 첫 달이었다. 첫 두 달은 내 생활에서 주업무와 부업무를 정의하고 일상 속에 어떤 루틴, 습관을 넣고 싶은지 계획하고 어떤 방법이 동기부여가 잘 되는지 시도하면서 실험적인 달을 보냈다.


동료와 함께 도모하는 일은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하는 건 서로를 위해 당연하다. 하지만 내 하루를 계획하는 것, 일주일, 한 달을 계획하고 착착해나가는 것은 여전히 작심삼일로 끝나는 겐 딴 세상 얘기같다.

내가 과연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다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이렇게 복잡한 세계를?


잘 생각해 보면 인류역사상 21세기는 가장 안전하고(기대수명도 늘어난) 예측가능한 시대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기술개발이 우리의 여가시간을 늘리고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감소시켰다.


오히려 우리는 재밌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자신의 일상을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다. 드라마나 유튜브, 숏츠에 압축된 우발적이며 재미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동경하는 동시에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고마워하기도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흠모하는 예술가, 작가, 위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불확실한 미래일지라도 하루 몇 시간의 루틴, 한 달을 채우는 계획, 1년을 바라보는 꾸준함으로 세상은 못 바꿔도 나 하나 정도는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2. 주업무? 부업무? 나의 주 정체성 인정하기


<3P 바인더> 회사의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동료에게서 배운 다이어리는 조금 특이했다. 자신의 활동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 시간을 형광펜으로 칠하면 내 활동이 어디에 치중되어 있는지 색상점유율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주업무 - 주요 업무
부업무 - 부수적인 업무, 부가가치를 가진 업무

자기 계발 - 자기 공부 및 계발 관련 활동

관계친목 - 모임이나 만남, 인맥관리활동

개인생활 - 식사나 생활 개인적인 활동


형광펜으로 타임라인을 분류한 필자의 주간 다이어리(목금토일)

이런 다이어리는 회사원이나 워킹맘에게 필요한 것 아닌가? 전업주부이자 작가를 지망하는 내가 쓰자니 내 하루가 약소하고 초라해 보였다.


내 [주업무]가 가사/돌봄 노동이란 걸 인정하는 것도 두 달이 걸렸다. ‘주 업무’, ‘부 업무’에서 주는 어감은 굉장히 비즈니스적이다. 더군다나 나의 시간 통계가 모임 원들에게 공개되기에 나는 주업무를 유급노동으로 분류하고 싶었다. 적은 소득이지만 프리랜서로 하고 있는 일이 주 업무고 가사 돌봄은 무급이기에 부업무라고 분류하는 게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자기부정이자 자본주의에 입각한 사고방식이었다.

전환점은 3개월째에 왔다. 하고 있는 알바 일이 줄면서 주업무로 분류한 유급노동 시간이 턱없이 줄었고 앞으로 고정적인 소득확보도 불안정해졌다. 반면에 주 25시간 이상씩 가사노동에 쓰고 있는 월별 통계가 내 위치를 정확히 일깨워주었다. 소득이 있었을 때도 없을 때도 내가 기본적으로 해내야 하는 역할은 가사와 양육이었다. 현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되고 싶은 자아, 유능해 보이는 자아를 3P 다이어리에 투영하고 있었다. 과감하게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제대로 분류해야겠다는 각오가 들었다.

최근 3개월동안 나의 시간을 분류해 낸 통계치

이런 나의 시행착오와 달리 어떤 분은 업무를 [][]로 나누지 않고 [주업무 1][주업무 2]로 나누기로 했다. 자신에겐 가사/양육도 주요하고 유급활동도 주요하기 때문에 굳이 기존의 언어를 채택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새로 만든 것이다. 와우! 너무 멋진 분이었다.



3. 내 일상이 블록처럼 구성되는 타임블록


데일리 다이어리든 위클리 다이어리든 타임라인에 시간별로 그날 할 일 계획이나 기록을 하기 시작하면 내게 주어진 활동시간이 블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한 시간 단위로 활동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짓게 된다. 내 경우 매일 아침 7시에는 아이들 아침을 위해 부엌으로 나서야 한다. 8시까지 아침상차림과 부엌청소를 마치고 9시까지는 물건 정리와 바닥 청소를 마무리하고 9시 정각에는 책상에 앉겠다는 시간별 계획이 자연스럽게 세워졌다.

이런 식으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블록으로 하루를 분할하는 습관이 생기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산만하게 이일 저일 하다가 포기하는 일이 줄어든다.


30대 프리랜서인 N님은 공백시간을 매주 집계해서 자투리시간을 줄이고 싶어했다. 프리랜서의 경우 업무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상 밀도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편 J님은 일이 들어오면 그 일을 끝낼 때까지 일상루틴이 다 망가지고 좀비처럼 일에 매달리는 게 힘들어서 타임플래너를 써야겠다고 하셨다. 자신의 노력이나 애씀이 시각적으로 만져지면 덜 불안해지고 스스로를 덜 닦달하게 된다.



생각보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게 시간을 많이 뺏겨가며 살고 있다는 것 - 특히 나 같은 40대 기혼 여성의 일상은 여러 가지 역할과 관계 욕구, 사건들이 뒤얽혀 내가 무엇을 진짜로 해내고 싶고, 어떤 것을 포기하기 싫은지 모호해져 버린다. 알맹이 없이 일상의 밀도만 높아진다. 이러다 덜컥 50대를 맞이하긴 싫었다. 부모님이나 내게 건강이슈까지 생기는 날엔 모든 일상이 갑자기 멈출텐데 그때 나를 지탱해줄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밤에 이번주 시간통계를 내서 간략하게 스스로 피드백한다



다이어리피드백 모임은 기록에 대한 중요성, 꾸준하게 쌓이는 것에 대한 믿음, 자신의 일상이 가진 밀도의 실체를 피드백 페이지를 통해 바라보고 진짜 내가 바쁜 게 맞는지 알맹이에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피드백타임은 타인의 다이어리를 피드백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 것만 하면 되었다. 각자 고유한 일상과 목표가 있고 욕구와 상황이 다르므로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 그 자체이다.


모임원에게 나눠준 주간 피드백 페이지/월간 피드백 페이지

회고하는 시간이 없다면 작심삼일로 끝나기 쉽다. ‘작심삼일’은 인간의 뇌가 과부하를 조절하는 기본 메커니즘으로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자신을 탓할 게 아니라 작심삼일이라는 메커니즘을 이용해 내 목표를 이루는 데 쓰자는 것이 3P 바인더 주간플래너의 작동 원리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일주일 시간 통계] [한 달 시간 통계]를 내는 페이지를 추가해 피드백하고 공유하고 지지해 주면서 지속할 힘을 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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