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일간의 마감일기
한 번도 안 깨고 아침에 일어났다. 마치 순간이동처럼. 영영 깨어날 것 같지 않은 몸이지만 끌고 나가 싱크대 수돗물을 틀어 손을 담그면 잠이 달아난다. 아침에 하는 설거지가 좋다. 오늘 아이들 아침메뉴는 닭가슴살 찢어 넣은 떡국. 건조기 2회 분량의 빨래를 아이들과 분업해 끝내고 라구소스를 만들었다.
이건 1시간 정도 걸리는 요린데 후반 30분은 약불에 뭉근하게 끓여주는 거라 그 30분 동안은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다. 달걀 감자 으깨서 색색깔 채소와 햄을 넣고 마요네즈로 버무리면 끝. 이렇게 만들어두면 주말이 편하다. 모처럼 주말에는 아이들과 공원에도 다녀오고 '나의 다정한 남편'*과 티타임을 가져야지.
* 오늘 시모임에서 김상혁 시인은 아내를 '나의 다정한 아내'라고 그냥 '아내'라고 퉁치지 않아서 좋았다. 나도 따라 해야지.
계속 고치는데 생각만치 잘 풀어내지 못하는 짧은 원고가 하나 있다.(뭐 하나뿐이겠는가) 필연은 인간이 붙들고자 하는 미련인가? 삶이 우연의 연속이라면 '나'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의문은 필연성을 획득하고 싶은 존재자의 분투다. 그래야 생을 견디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을 내 나름대로 의미 있게 회고하며 앞으로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글을 쓰면서 살자고 다짐한 이유이기도 하고.
아침 9시부터 책상에 앉아있는데 금세 밖이 어두워진다. 꾸역꾸역 다시 퇴고를 하고 이런저런 정해놓은 일정들을 쳐냈다. 사실 원고 퇴고는 1,2월 내내 잡고 있었던 거라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은 마음이 있다.
기획서에 전시도 하겠다 하고 굿즈도 만들겠다 하고 북토크도 하겠다했는데 이 모든 걸 기획할 생각을 하니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구나. 그래서 미리 지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수정계획서를 내기 전이니 이번 주까지 꼼꼼히 결정하기로 했다. 마침 책을 함께 만들고 있는 책방에서 국제도서전에 나갈 수 있게 됐다고 했고 내 책도 거기 낄 수 있게 되었다. 와우! 그럼 정리가 좀 수월해지겠다.
3월 수정기획안 제출 -> 교부신청하기
4월 책 내지 편집 및 표지 디자인 -> 인쇄소 견적 비교 등
5월 책 인쇄 - 간단한 굿즈 기획(책갈피나 수첩 같은)
6월 도서전 참가준비 - 명함과 포스터 만들기
전시는 도서전 끝나고 작고 좁은 벽에 간단히 사진 몇 장과 글 몇 개, 책과 포스터 이렇게만 놓고 '전시'보다는 '진열'의 컨셉으로 소박한 홍보를 생각하고 있다. 책을 예쁘게 만들고 싶다던가, 굿즈를 좋은 걸로 해야지. 전시를 어떻게 꾸며볼까? 같은 건 사실 책의 내실이 다져진 다음에 생각할 일이고 나는 아직 독립출판물에도 못 미치는 내공인데 자기 객관화라도 잘 해야지.
원고편집과 책디자인 인쇄까지 내가 주체적으로 신경 써야 하니 마음이 많이 분산된다. 이 책 말고도 해야 하는 일들은 항상 있고 하고 싶은 활동도 있기에 홍보까지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건 독립출판물의 능력 밖인 듯하다. 길게 끌고 가지 말자. 이 작업을 계기로 확장시켜보고 싶은 내 역량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아침을 안 먹겠다고 하더니 얼마 뒤 막내가 눈물을 머금고 싱크대 앞에 서있는 내게 와 안긴다.
"엄마, 누워서 안아줘. 엄마가 와줄 줄 알았는데 안 와서 슬펐어. 할 얘기가 있어."
하길래 시계를 흘깃 보고 침대에 아이를 품에 안고 누웠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눈까지 내리고 피곤한지 늦게 일어난 초2막내.
"그럼 오늘은 엄마랑 같이 나가자, 모닝빵 따뜻하게 덥혀줄 테니 좀만 누워있다 나와"
기분이 나아진 아들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등굣길을 걸었다. 나는 사진 한 장 찍고 가고 싶은데 학교 늦겠다고 재촉하는 아이...(학교 가기 싫은 사람 맞아?)
어제 퇴고를 마친 원고를 목차대로 정리했다. 날짜순으로 배열할까 주제별로 모아볼까? 고민했는데 날짜는 나한테나 의미가 있지, 읽는 사람에게는 주제별로 모아보는 것이 가독성을 높이고 집중력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7개의 범주가 있었는데 5개의 장으로 줄이고 60여 개의 시와 단상들을 주제에 맞게 넣었다. 그랬더니 훨씬 짜임새가 좋아졌다. 제목이 날짜였던 글이 많았는데 날짜는 다 지우고 제목을 정했고 제목 정하기가 어려운 글들은 챕터제목에 숫자를 붙였다. 이제야 '집'다운 면모가 갖춰진 느낌.
편집자는 정말 멀리서 많은 것들을 객관적으로 봐야 하구나. 저자의 의도, 전체적인 맥락, 가독성, 독자가 지면을 대하고 느끼는 뉘앙스부터. 잘 만든 책을 만나면 내가 왜 끌어안게 되는지 그 이유들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책을 만들어 보게 돼서 느끼는.
특히 내 자본만 들어가면 제약이 많은데 지원되는 예산이 있으니 시야가 좀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