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샘플인쇄를 받고 무너진 멘탈

이제부터가 진짜 출판시작!

by 땅콩

한 달 넘게 기록은 안 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열심히 다시 퇴고를 하고 디자인을 했다. 어제는 인쇄대행업체 미팅을 해서 대략의 제책형태를 결정하고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샘플인쇄 맡긴 책이 와 있었다. 실제로 받아보니 윽. 생각보다 너무 별로다. 표지를 다시 해야 할 정도. 급 우울해졌다. 일단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들을 꼼꼼히 적어두고 래퍼런스 자료 챙기고 대략의 컨셉을 다시 잡기로 했다.

샘플인쇄 문제파악하기


0. 판형과 제책

어제 제작업체 미팅했을 때 결정한 건 후가공을 많이 넣지 않기로 했다. 그러려면 대표님은 디자인이 좋아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하셨고 기존 판형이 단행본 느낌이 많이 나서 에세이류 판형(길쭉한 판형)으로 조금 조정했다.

1. 표지 디자인

모니터로 작업하는 것과 실제 인쇄는 색감도 폰트의 두께도 너무 달라서 집에서 샘플을 아무리 뽑아봐도 인쇄소 것은 또 다르다. 더 적나라하게 빈틈이 보인다. 내 표지의 문제는 사진이었다. 내 책의 정체성은 사진인가? 산문인가? 사진이 있는 산문이지만 산문에 더 초첨을 두었다. 이게 기획방향. 그러니 꼭 표지에 사진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디자인하기.


2. 내지 디자인

사진과 텍스트를 같이 배열하면 고딕체가 잘 어울리지만 산문이 주라면 당연히 명조체 위주의 분위기. 그럼 사진을 분리시켜야 한다. 들어가는 사진 과감히 빼는 게 좋다. 오히려 가독성을 해치고 몰입을 방해한다. 본문 폰트를 명조체로 모두 바꾸고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들을 검색해서 내지 구성을 참고받았다. 내가 왜 내 책 래퍼런스를 모아 볼 생각 못했지? 사진책이라고 조금 쉽게 생각했나? 뒤늦게 후회를 하며 두루두루 살펴보니 답은 '심플함'에 있었다. 그리고 표지를 먼저 디자인해야 그 방향으로 내지는 수월하게 앉힐 수 있다. 볼륨을 키워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실 있는 한 컷, 가독성 있는 디자인으로!

그거 말고도 최종 원고 교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고 누락된 글이나 정보가 없는지 매의 눈으로 더블체크해야 하는데 여기까진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3. 저작권과 그 외 보도자료 등

내 책에 인용되는 글이 있어서 출판사에 문의해 놓았고 저작권료를 송금하고 재수록 허가서에 사인해서 메일로 보냈다. ISBN을 등록을 위해 책소개와 저자소개 등을 작성해서 출판사에 넘겼고 국제도서전 가이드북에 수록될 책소개 등 표지에 들어갈 이런저런 글들을 대충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니 멘탈이 조금 단단해진 느낌.


4. 인쇄일정, 국제도서전 전까지 가능할까?

독립출판물이기 때문에 몇 부를 인쇄해야 할까 초반부터 고민이 많았다. 편집자가 없기 때문에 마케팅과 홍보를 직접 해야 하니 1천 부씩 하는 1쇄를 나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디지털 인쇄로 하자니 디지털로 받아본 샘플인쇄 질이 나쁘진 않지만 이 기회에 옵셋인쇄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일단은 500부 견적과 일정에 대해 문의를 넣어놓고 최대 500부 최소 300부를 인쇄하기로 했다. 옵셋인쇄는 최소 2주의 시간이 들기 때문에 3주도 안 남은 이 시점에 옵셋인쇄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내가 찾은 기쁨 중에 하나는 퇴고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는 것이다. 퇴고할수록 글이 좋아지고 깊어지면서 내면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했다. 책에는 원고지 5매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을 주로 실었지만 긴 글을 쓰는 호흡을 욕심내도 될 것 같다. 퇴고를 할 때 읽었던 책들은 두 배 더 잘 흡수되었는데 늘 퇴고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정이 촉박해 어쩔 수 없이 윤문을 끝내야 했을 땐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상업디자인을 오랜만에 해보았는데 거의 15년 만이다. 웹디자인만 하다가 인쇄물 디자인을 하니까 훨씬 성취감이 높았다. 웹디자인은 온라인에 게재되고 반짝이는 액정 속에서 끝나지만 책은 만져지는 것, 아주 조그마한 디테일들이 모여 자기만의 느낌을 갖는 사물이 된다는 것. 이것이 새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물론 인쇄된 것과 모니터상의 괴리를 좁히는 건 멀었고.


이 두 가지 성취감과 사물의 사이즈와 재질, 내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이 이번 독립출판에서 가장 크게 얻은 쾌거다. 책이 잘 나가줘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일하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던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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