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고식 치르기

책을 냈다고 북토크 같은 걸 해보았다

by 땅콩

+ 이 글은 일주일 전 써놓고 이제야 올리는 글이므로 시간구성이 현재로 되어있는 점!



서울국제도서전 개막 이틀 전 책 인쇄가 다 됐다는 연락을 받고 흐린 일산대교를 두 번이나 왕복하며 책을 받아왔다. 500부라는 숫자가 처음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배본사로 갈 것, 집으로 가는 것, 도서전으로 가져갈 것을 나누었다. 이렇게 무사히 일정에 맞게 인쇄가 완료된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고 이 모든 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신 실장님을 붙잡고 인쇄소 앞에서 인증샷도 남겼다.



편집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마케팅까지 알아서 해야 하는 1인출판사의 세 멤버는 각자의 책과 관련작업을 하다가 인쇄파일 넘기기 나흘 전에 뭉치게 되었다. 제책 형태부터 감리-배본사-도서전홍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초반 원고교정과 편집 또한 혼자 해내기 버거운 작업이다.



그나마 인쇄소에 찾아온 책은 기대보다 너무너무 예쁘게 잘 나와주어서 우리는 각자의 책을 가슴 벅차게 품에 안았고 그 뜨거운 마음으로 부스에서 드릴 리플릿, 부스로 끌어들일 문장책갈피, 큐레이션과 굿즈 등을 소개해 줄 팻말등을 고운 종이에 인쇄했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452개 회사가 참가하고 19개국이 함께한 서울 코엑스에서 펼쳐지는 도서축제로 준비된 15만 표가 얼리버드 예매에서 매진된 매우 큰 행사다.

서울국제도서전 각각의 부스는 지난해보다 더 작아지고 더 비싸져서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1인출판사들은 연합으로 나왔더랬다. 다행히 우리 부스는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매년 할당받는 구역 좁은 부스로나마 참가하게 되었다. 국제적인 책 축제에서 경쟁률 높았던 귀한 부스를 공짜로 누리는 행운을 받았으니 제대로 준비를 하고 싶어서 며칠 밤낮을 같이 소통하고 디자인하고 프린트하고 인쇄 맡기면서 애를 썼다. 그 사이에 도서전 첫날에 예정된 출간동료 작가와 대담형식의 북토 크도 준비해야 했다.

도서전 하루 전 부스단장을 마치고 나오는 길

서로 물어봐줬으면 싶은 질문들을 적고 답변을 서면으로 적어서 교환한 다음 퇴고를 해서 대본을 만들었다. 첫 리딩 시간, 역시 글 쓰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글을 말로 옮기자 대번에 어색한 말투와 부자연스러운 어휘들이 도드라졌고 이건 정말 연습이 꽤나 필요하구나 절감했다. 대본을 입말로 고치고 질문과 답변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오고 가게 바꾸어서 리딩을 한번 더 했고 얼추 큐시트를 봐가며 진행한다면 무리가 없을 듯했다.

그러나 현장은 완전히 달랐다. 도서전 내부 경기도 부스로 오는 길목 한켠에 의자 12개 정도가 마련된 야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개방감 있는 장소에서 나는 생애 첫 북토크라는 걸 해보았다. 그래도 나름 오디오 감독님도 계시고 PPT를 띄울 화면도 있고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 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이런저런 준비작업으로 대본리딩만 겨우 하고 나만의 큐시트를 뽑아오지 못한 나는 헐레벌떡 코엑스를 나와 한적한 곳에서 큐시트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자리에 앉아 등을 대자마자 며칠 내내 수면부족이었는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악몽은 졸음을 타고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후 3시, 대담이 시작되고 출판사 대표는 부스를 비워둘 수 없어 우리를 소개시키고 자리를 떴다. 동료 두어 분이 앞자리를 채워주었고 뒷사람들은 죄다 모르는 사람들, 그 뒤로 경콘진 오디오감독님이 흐뭇한 미소로 응원을 보내고 계셨다. 부스를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스몰토크는 그렇게 즐거워하던 내가 열 명정도 밖에 안 되는 관객 앞에서 가슴은 왜 이리 뛰는가?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은가? 지나가며 흘깃거리는 행인들의 시선과 사진을 찍으며 한켠에 서있다 가는 사람까지 눈앞에 스치고 지나가는 피사체들이 내 머리를 하얗게 비워버렸다. 도서전 소음에 묻혀서 내 목소리가 나한테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큐시트에 적어놓은 키워드는 공중분해되어 이어가지 못했고 동료에게 자연스럽게 들어가야 할 질문이 생각나지 않아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듯했다.

다행히 동료작가는 나보다 연습을 많이 한 상태였고 이런 자리를 경험해 본 적 있어선지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내가 빼먹은 대사나 건너뛴 부분들을 살려내서 망할뻔한 북토크에 인공호흡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5분인데 20분도 안되어 벌써 대본의 끝까지 다녀와버린 상태였고 시간은 절반이나 남아있어서 곤란한 상황이 닥치자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사실 책 출간도 처음, 북토크도 처음, 도서전도 처음인데... 이렇게 사람이 지나다니고 정신없는 공간에서 첫 북토크를 하게 될 거라 상상을 못 해서 지금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여러분. 다행히 옆에 계신 작가분께서 제가 망친 것들을 모두 살려내주고 계시고요. 그래서 엄청 감동 중이고 너무 든든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져서 이제 대놓고 "대본대로라면 제가 여기서 뭘 묻기도 되어있었죠?"동료에게 물어가며 겨우겨우 북토크를 마쳤다. 결국 나는 준비한 말도 다 못 했으며 입에서 나온 말도 온전하게 전달된 게 없이 '최악의 경험'만 몸에 새기고 막이 내렸다.


우리의 진행을 지켜본 관련업계 지인이 우리를 위로했다. 첫 북토크를 진행자 없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어가는게 실은 무척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방식이다, 더군다나 이런 환경에서 초보자들이 하기엔 무리였다며 이 정도면 훌륭했다고 했다. 또 한 분의 지인은 북토크 장소를 뒤늦게 보시고선 이런 곳에서 첫 북토크를 하다니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라며 박수를 쳐주셨다.

북토크가 끝난 뒤 다행히 뒤늦게 앞에 앉아 우리 얘기를 듣던 한 분이 부스에 찾아와서 우리 책을 사가시면서 응원을 해주셨고 나는 그분 책에 사인을 해드렸나? 이름을 물어봤었나? 기억에 없다. 아무튼 너무나 고마운 분이고 사진이라도 찍을 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북토크 악몽이 끝나고 마친 홀가분한 기분으로 도서전 첫날이 마감되었다. 그런 악몽을 위로해 주려는 듯 둘째 날에는 문재인대통령이 부스를 찾아주셨고 다음 날은 한 부스에서 박정민배우(무제출판사 대표)를 만나 사진도 함께 찍었다. 그렇게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것에 비해 더 큰 행운들을 도서전에서 만날 수 있어 사흘간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 글은 이제 책출간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자 종착지. 홍보와 마케팅이다. 원고교정부터 편집디자인-인쇄까지도 기나긴 여정이었는데 독립출판물은 아직도 갈길이 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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