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인쇄파일을 넘기고 표지를 쳐다보고 있다

감리 현장에서 배운 것

by 땅콩

내 책에 대한 확신이 바닥을 치거나 불안이 엄습할 때면 ‘독립출판’이라는 정확하게는 ‘독립’이라는 어휘가 주는 정체성을 되새겼다.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 ‘독립’에는 있었다.


“그래, 이것은 ‘독립출판물’이야.”


나 스스로 내 책에 대한 퀄리티나 완성도에 관해 다른 책들과 비교가 될 때 주문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던 단어. 그러나 표지디자인은 마지막까지 내게 좌절을 주었다. 표지가 정말 중요해서 디자인비만 150~200만 원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이 부분은 독립출판이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안 되는 디자인 실력으로 그들을 따라 하려고 가랑이가 찢어지느니 오히려 독립출판스러운 단순한 디자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49070611451.jpg 내지 디자인을 해줬던 다른 동료의 책 감리혀장_일러스트삽화가 들어감

첫 옵셋 인쇄를 경험하는지라 감리 현장도 처음이었다. 감리는 보통 초판 인쇄 때 하는데 인쇄소가 표지와 내지 작업할 때 참관해서 첫 세팅을 확인하고 잡아주는 작업이다. 옵셋인쇄기에는 네 가지 톤(녹청/마젠타(빨강)/노랑/블랙) 의 잉크를 단계별로 뿌려서 인쇄하기 때문에 샘플인쇄를 해보고 톤을 조절할 수 있다. 내 책은 내지가 양면 8도에 사진이 많았기 때문에 부족한 일정에도 감리를 꼭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표지가 변수였고 내지에서도 실수가 발견되었다.



첫 번째 실수

- 별색 인쇄를 할 걸 그랬다.

내 표지는 민트색 바탕과 자주색 타이틀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표지였다. 바탕색은 샘플을 뽑아보고 노랑과 파랑만 조금씩 조정해서 머릿속에 있는 톤을 구현해 낼 수 있지만 타이틀이 쨍하지 않았다.

“별색으로 인쇄를 하지 그랬어요? 비용도 별색 하나당 25,000원밖에 추가되지 않아요.”

실장님이 아쉬워하셨다. 별색은 해당 색 잉크를 기장님이 별도 조색해서 만들기 때문에 바탕색 색감 조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타이틀이 더 진하고 선명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한테 그런 지식과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내가 생각했는 ‘별색’의 정의는 좀 독특한 색이 필요할 때 ‘별색인쇄’를 한다고 생각했다. 민트색 바탕과 자주색 타이틀을 별색 인쇄로 뽑아냈다면 다른 가공 없이도 표지의 선명함을 얻었을 것이니 2쇄째는 꼭 별색 인쇄를 해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암요, 2쇄만 찍을 수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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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수

-표지의 제목 폰트가 너무 작았다.

이 표지는 3차까지 나온 시안에서 최종 확정된 것인데 샘플인쇄를 충분히 해보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테스트 프린트에서 글씨가 조금 크게 느껴져 한, 두 포인트 줄였는데 그게 문제였다. 감리 현장에서 준 표지를 집에 와 잘라보니 디자인적으로 미비한 느낌이 나는 표지가 돼버렸다. 그럭저럭 모양만 빠지지 않길 바랐는데 미처 준비를 못하고 표지를 만든 것 같은 ‘미비’가 나를 괴롭혔다. 그런 한탄을 하자 동료가 위로했다.

“요즘 독립출판물들 다 표지 심플해, 그게 오히려 차별점이 느껴져서 좋던데.”

자본도 지식도 부족하지만 열정하나로, 첫 책이니까 다행히 내 책이니까, 실전에서 멋지게 실패하고 배우기!



세 번째 실수

- 마지막에 바꾼 사진들이 준 변수

내지에 들어가는 사진은 인화도 해보고 모조지에 디지털 인쇄, 샘플 책 인쇄까지 두세 번의 테스트를 거쳤던 것이라 내지 감리 때는 많이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수는 나왔다. 파일 넘기기 하루 전 교정하면서 사진 하나를 교체했는데 그게 말썽이었다. 레벨 조정에 실수가 있어 어두운 부분이 아예 먹색에 묻혀버렸다. 처음에 결정했던 나를 믿지 못하고 바꿨던 것들이 문제가 된다. 팀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저런 하찮은 고민까지 나눌 동료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 객관성과 초반 기획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불안감이 문제야) 원본 파일이 문제라서 감리 현장에서는 그저 2쇄 때 보완하라는 충고를 받을 수밖에.

20250605_162809.jpg 배경이 먹색으로 묻힌 경우_감리현장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이 정도면(이 사진 하나 빼고는)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인쇄가 잘 나온 편이에요.”라고 기장님이 힘을 북돋아주셔서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감리를 끝냈다. 열심히 작업해주시고 계신데 나 너무 침울했나? 그래도 이렇게 좋은 인쇄소를 소개해주고 친절한 기장님과 실장님을 만난 것에 축복을!


책을 하나의 물질로 구현해 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책이 가진 이야기(내용) 일 것이다. 독립출판의 경우 시스템 밖에서 만들기 때문에 출판사와 편집자가 보필해 주는 ‘기반’의 부재가 눈에 띄면 안 되었다. 내 책을 예로 들자면, 사진 책이니 사진 톤과 구현에 따른 실수로 인해 경험치가 드러날 터였고 교정과 교열이 미비하면 읽는 이로 하여금 출판에 대한 기본태도가 의심받을 터였다. 글 내용이 독자에게 이해가 안 가거나 안 맞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과 취향의 문제지만 사진인쇄와 교정의 문제는 게으름, 즉 무능력의 문제였다. 돈을 주고 ‘게으름’을 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독립출판물이라도 그 가격 안에서 충분히 애쓴 모습을 어필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기술을 당연하게 탑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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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보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내가 마음을 열면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물질로서 내부가 가진 독창성을 구현하려고 공을 들이지 않는 책이라면 굳이 독립출판물을 사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독립출판물은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판매 현장에서 존재감이 주요해진다. 이 책을 어필하려면 기본적인 출판 기능과 이 책만이 가지는 물질적인 독창성이 필요해진다는 말이다. 어떤 장소에 놓여 있을 때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지고 책을 들고 펼쳐보게 하는 힘. 그것이 과연 내 책에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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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감리 현장, 실장님(인쇄대행사)과 기장님(인쇄소) 사이에서 아는 것도 없이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주워들으면서 실수와 실패의 쓴맛을 경험했다. 잠시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이 책으로 인해 얻은 경험만큼은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값졌다. 무엇보다 책 출판 기획부터 인쇄까지 모든 과정이 몸에 그대로 새겨졌다. 책 한 권이 갖고 있는 무게가 새롭게 보였다. 어떤 책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자신감보다는 함부로 책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겸손함이 피어올랐다. 그게 내 책이라도, 내 돈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아서 제작비를 일부 지원받을 수 있었고 동료가 있어서 여러 의견을 나누며 외롭지 않게 출판을 겪을 수 있었다. 오늘은 가제본이 도착한다. 이제 제작과정에 대한 아쉬움은 잊고 이 책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록 나아가야 할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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