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 리뷰
"난 진짜 궁금해서 그래.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데, 세상의 인정조차 주어지지 않으면, 그것을 왜 계속해나가겠어? 보상심리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삶을 응원할 수 있어, 너?"
나는 윤미의 그 질문이 고태경에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르페 디엠이니, 욜로니, 그렇게 살고 싶어도 감독 지망생뿐만 아니라 입시생들이, 취준생들이, 모든 청춘들이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더더욱 기약도 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일이다.
<GV 빌런 고태경> 113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비싼 수업료 치른 거로 생각해. 실패도 못 해본 사람들이 수두룩 해. 실패에 자부심을 가져."
그 수모를 겪은 게 잘한 일이라고? 영화를 만들며 겪은 고난을 통해 배운 기술들은, 영화를 만들 때 이외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중략)
"작품 완성하려고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지? 그런 거 아무나 못해. 난 말이야, 이제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무릎 꿇는 것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진짜 부끄러운 건 기회 앞에서 도망치는 거야."
고태경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덧붙였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GV 빌런 고태경> 138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나는 민 대표의 말처럼 딴짓을 하고 있는 걸까. 돈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겠지. 만약 내가 이백만 관객이 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민 대표는 딴짓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딴짓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건 대체 언제 주어지는 걸까.
<GV 빌런 고태경> 150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삶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오케이를 외친 순간들이 드물게 있었다. 무언가가 좋다는 감정,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 사람들은 그래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불확실한 생에 확신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어서.(중략)
삶은 엉터리고 대부분 실망스러운 노 굿이니까 사람들은 오케이 컷들만 모여 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가 '영화 같다' '영화 같은 순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엉성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오케이를 살아보는 드문 순간인 것이다.(중략)
그러나 계속 후회 속에 빠져 멈춰 있을 순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GV 빌런 고태경> 198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영화는 내게 좋은 것만 줬는데. 영화가 나한테 상처를 준 게 아닌데. 영화가 미워지고 극장도 안 가게 되더라. 영화도 밉고 나도 밉고... 나, 그저 영화가 좋아서 그다음은 생각도 않고 영화학교에 갔어. 돌아보면 난 그다지 감독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 꼭 감독이 돼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게 행복의 척도도 아니고."(중략)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뭘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겠어?"
<GV 빌런 고태경> 202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GV 빌런 고태경> 241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