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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스피디아 May 07. 2024

<GV 빌런 고태경> 실패한 사람에게 추천하는 소설

<GV 빌런 고태경> 리뷰



읽은 계기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 <GV 빌런 고태경>의 반납기한이 내일이라는 걸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은 네 시간 반을 몰아서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위로받았다.


줄거리

주인공 조혜나는 변변치 못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그는 섣부르게 기회를 잡아 <원찬스>라는 독립영화를 찍게 되지만, 처참히 실패해 스스로 패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혜나는 우연히 관객을 초대하여 질문을 받는 영화 행사인 GV의 사회를 맡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GV 행사 때마다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관객 GV 빌런 고태경을 만나게 된다. 유난히 거슬렸던 그가 혜나가 좋아했던 영화 <초록 사과>의 조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태경을 만나 다큐 제작을 제안하는 혜나. 그에게 받은 현재 명함에는 택시 기사라는 직함이 나와 있다. 조감독이었던 고태경은 왜 택시 기사가 되었을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GV에 참석하는 걸까? 혜나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고태경을 알아간다.


책 속 인상 깊었던 문장

"난 진짜 궁금해서 그래.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데, 세상의 인정조차 주어지지 않으면, 그것을 왜 계속해나가겠어? 보상심리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삶을 응원할 수 있어, 너?"

나는 윤미의 그 질문이 고태경에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르페 디엠이니, 욜로니, 그렇게 살고 싶어도 감독 지망생뿐만 아니라 입시생들이, 취준생들이, 모든 청춘들이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더더욱 기약도 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일이다.
<GV 빌런 고태경> 113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 이 책은 변변찮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이다. 돈 되는 걸 쫓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 시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 일이 싫어지고 포기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최근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읽었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중요하고, 돈을 쫓으라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듣는다. 최소한의 생존이 되어야 하니까. 남에게 금전적으로 민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할까? 정말 유튜버 윤미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돈 되는 걸 쫓아야만 할까?


그리고 꿈을 쫓으라는 이야기는 추상적이고 허황되게만 들린다. 아니 꿈을 가지는 걸 강요하지 말라는 시대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해도 꿈을 쫓으며 고태경처럼, 조혜나처럼 사는 삶도 너무 멋있다.


"돈을 쫓으세요. 현실을 추구하세요."

라는 메시지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꿈을 쫓는 것도 멋진 삶이야."라는 말을 해 주는 이 소설이 그래서 나에게는 신선했다.



"비싼 수업료 치른 거로 생각해. 실패도 못 해본 사람들이 수두룩 해. 실패에 자부심을 가져."

그 수모를 겪은 게 잘한 일이라고? 영화를 만들며 겪은 고난을 통해 배운 기술들은, 영화를 만들 때 이외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중략)

"작품 완성하려고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지? 그런 거 아무나 못해. 난 말이야, 이제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무릎 꿇는 것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진짜 부끄러운 건 기회 앞에서 도망치는 거야."

고태경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덧붙였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GV 빌런 고태경> 138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 이 대사를 보는데 눈물이 나왔다. 나는 야심 차게 철학과 교수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갔지만 실패했다. 철학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게 누구도 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 말했고, 그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철학에게서 도망치고 말았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대학 동기들처럼 멋진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학원 동기들처럼 멋진 교수가 되거나 논문에 몰입하지도 못했다. 책에서 나온 영화일을 하고 실패한 승호처럼 학원강사로 먹고살고 있다.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후 초등논술학원강사. 현재는 난임으로 퇴사 후 아이를 낳고 열심히 육아 중. 블로그로 프리랜서나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발버둥 치지만, 그조차 나 자신을 통제하기가 쉽지가 않아 고군분투 중.


이렇게 보면 내 인생은 실패투성이인가? 나도 내 실패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나? 나는 무엇을 완성했나?


그런데 오늘 퇴사 후 쭉 나를 봐 오던 친구가 말해주었다. 퇴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많이 앞으로 나아간 것 같다고. 성장한 것 같다고. 나는 객관적인 내 상태를 나열하며 실패투성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말해줬다. 계속해서 꾸준히 뭐라도 시도하고 있는 게 멋지다고.


사실 지금 이 리뷰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쓴다. 포스팅 하나하나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나는 민 대표의 말처럼 딴짓을 하고 있는 걸까. 돈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겠지. 만약 내가 이백만 관객이 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민 대표는 딴짓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딴짓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건 대체 언제 주어지는 걸까.
<GV 빌런 고태경> 150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삶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오케이를 외친 순간들이 드물게 있었다. 무언가가 좋다는 감정,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 사람들은 그래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불확실한 생에 확신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어서.(중략)

삶은 엉터리고 대부분 실망스러운 노 굿이니까 사람들은 오케이 컷들만 모여 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가 '영화 같다' '영화 같은 순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엉성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오케이를 살아보는 드문 순간인 것이다.(중략)

그러나 계속 후회 속에 빠져 멈춰 있을 순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GV 빌런 고태경> 198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영화는 내게 좋은 것만 줬는데. 영화가 나한테 상처를 준 게 아닌데. 영화가 미워지고 극장도 안 가게 되더라. 영화도 밉고 나도 밉고... 나, 그저 영화가 좋아서 그다음은 생각도 않고 영화학교에 갔어. 돌아보면 난 그다지 감독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 꼭 감독이 돼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게 행복의 척도도 아니고."(중략)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뭘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겠어?"
<GV 빌런 고태경> 202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 나는 무엇을 사랑할까? 퇴사 후 관찰한 나는 책, 드라마, 영화, 카페, 맛집,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걸 가지고 커리어를 추구하면서 그게 싫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그게 내 맘같이 잘 되거나 풀리지 않을 때.


내게는 그게 "책과 글쓰기"였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는 책리뷰를 매일 하루에 한 권은 써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책리뷰를 쓰고 싶지만 그러기가 너무 어렵고 버거워 외면하고 싶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멋진 책리뷰 포스팅을 볼 때, 한없이 작아지고 책이 미웠고, 내가 미웠다.


그런데 승호 말이 맞다. 책은 내게 좋은 것만 줬다. 누가 뭐래도 책은 내게 선생님이고 친구였다. 나는 평생 책에게서 배움과 위로와 재미를 얻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책 읽는 재미'를 느꼈다. 아웃풋을 해야 한다는 집착도, 강박도 전혀 없었고 그저 뒷내용이 궁금해 한 장 한 장 몰입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런 경험이 너무 오랜만으로 느껴졌고 정말 좋았다.


책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책을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 내려놓으려 한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마음, 성인 대상 독서 교육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책으로 돈을 벌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책을 더욱 사랑하고 알리고 싶다.


애초에 이 리뷰를 쓰게 된 이유도 그거였다. 난 이 책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했고, 내가 느낀 이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는 첫 마음이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GV 빌런 고태경> 241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 나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다. 내가 쓴 글과, 내가 한 말, 내가 추천한 책으로 인해서 누군가 삶의 의욕이 불어넣어 지고 기분 좋아지게 되는 것. 그게 독서모임이면 더 좋고. 유튜브나 블로그이거나 책이면 더 좋겠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추구하면서도 여태껏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고태경처럼 포기하지 말아야지.



마무리

실패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무얼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이 책은 무엇보다 위 질문에 답하는 소설이다. 이건 정말 흥미로웠는데 우리는 대개 성공한 사람들만 볼 수 있고 실패한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영역에서 사라졌을 뿐. 죽지 않은 이상 계속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에서는 영화판에서 실패한 여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실패를 안고서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돈을 쫓고 꿈을 포기한 윤미, 사랑하는 영화를 더 사랑하기 위해 영화를 포기한 승호, 조롱과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태경과 혜나까지.


무엇보다 이 책은 실패했던 사람들, 그리고 무언가의 지망생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특히 자신이 실패해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면 분명히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별점: ★★★★★

한줄평: 순수하게 책 읽는 재미를 다시 느끼게 해 준, 실패자와 지망생을 위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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