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잘하는 데, '서운하게 듣지마' 가 피곤한 당신

회사 처세술

by 마찌

김대리는 생각합니다.
‘왜 이 선배는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

저렇게 했으면 훨씬 깔끔하고, 효율적이었을 텐데…’


대리가 되면,

조직이 돌아가는 원리가 슬슬 보입니다.
선배들의 일 처리 방식도 평가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하죠.
주변에서는 “요즘 잘한다”는 인정도 조금씩 들려옵니다.
‘내가 다른 팀 대리보단 낫지 않나?

일머리가 좀 있지 않나?’ 이런 자신감도 생깁니다.


바로 그 시점에, 예상치 못한 벽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팀 내 선배인 이 차장이 퇴근길에 툭 던집니다.
“야, 김대리. A 건 한다며? 너무 힘빼지 마.

그게 될 일이면 진작에 했지.”


혹은 좀 더 노골적으로,


“김대리 요즘 너무 나서는 거 아냐?

부장님이 네가 제안한 거, 나한테도 적용해보자는데…

이거 김대리가 나한테 일 시키는 꼴이잖아?

무서워서 같이 일하겠어?”


그리고 꼭 덧붙입니다.
“서운하게 듣지 마. 나니까 해주는 말이야. 너 생각해서.”

경험상, 이 말이 나오는 순간에는 흘려 듣는 게 답입니다.

“서운하게 듣지 마”는 표현 자체가
‘상대가 서운해할 만한 말임을 화자도 알고 있다’는 증거이자,
그 말에 공격성이 들어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널 위한 조언’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합니다.


진짜로 나를 생각해주는 선배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김대리, A 건 아주 좋던데,

여기에 B 하나만 더하면 20% 더 좋아질 것 같아. 어때?”
이처럼 협력과 개선의 언어로 말하죠.
그럴 땐 당연히

“서운하게 듣지 마”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의 상당수는 '조언'이 아니라

‘감정의 배출’에 가깝다는 것.


짜증이거나, 견제이거나.

처음엔 ‘뭐지?’ 하다가 곰곰이 생각할수록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반박하려는 충동도 듭니다.
‘그 선배가 다음에도 그러면 이렇게 말할까?’

“왜요? 제가 하는 게 대성공으로 터질까 봐 조마조마하신가요?”
혹은,
“네? 제 의도는 그런 게 아닌데요…”
말끝을 흐리며 상황을 설명해보기도 하고,
커피 타임을 빌려 길게 풀어보기도 합니다.


경험상 그런건 안 통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감정은 이미 꼬여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꼬임은, 내 설명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때때로 외롭습니다.


존경할 수 없는 선배에게는 마음이 닫히고,
대면대면한 관계는 더욱 거리감을 키웁니다.
인사 시즌이 되면 이 감정선은 더 민감해지죠.
조직이 나에게 큰 파이를 줄수록,
작은 파이를 받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연대하기 시작합니다.

심한 경우,

내 말투 하나하나를 트집 잡아,
그들끼리 따로 만든 단톡방에서 이야깃거리로 삼습니다.

이 모든 게 명확한 ‘갑질’은 아니기에,
HR에 이야기해도 마땅한 근거도 없습니다.
이건 너무도 미묘한 감정의 층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일잘러들이,
“그래,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라.

나는 그냥 실력 쌓아서 위로 간다.”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고립의 길을 선택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고립은 생각보다

정신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고,
스트레스도 점점 누적된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택한 전략: ‘흥선대원군 권법’


흥선대원군은 실권을 잡기전,
살아남기 위해 방탕한 척,

어리숙한 척, 모자란 척 했습니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회사도 결국 혼자만 잘해서는 나아갈 수 없는 조직이더군요.
존경하지 않던 선배에게도 언젠가는 부탁할 일이 생기고,
사수가 되거나 부팀장이 되면,
내가 사람을 이끌어야 할 입장이 됩니다.

조직을 옮겨도,

이 문제는 따라옵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뉘앙스는 꾸준히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타 팀원이 나에게
엄밀히 말하면 관할이 아닌 업무를 요청해온다면,
“그건 제 담당이 아닌데요”라고 딱 자르기보다는


“진짜 해드리고 싶은데,

팀장님이 급하게 시킨 A 건이 있어서 오늘 내일은 진짜 바쁘거든요.
대신 제가 비슷한 예전사례 하나 보내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데 못하는 ‘선의의 딜레마’ 연기를 합니다.


또, 선배가 노골적으로 견제를 해온다면,

“김대리, 덕분에 나도 일 많아지겠어~”


그럴 땐,

“헉, 그런가요? 열심히 해보려 한 건데… 죄송해요.

제가 커피 사러 가는데 아이스라떼 괜찮으세요?”


어수룩하게 넘겨버립니다.
상대는 빈정거렸는데,

나는 미안하다고 하고 커피까지 사온다?
뒷말 나올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내 정신건강에도 훨씬 이롭습니다.


결론: 일은 냉정하게, 사람은 어수룩하게


“제가 오늘 맥주 한잔 살까요?”
이런 식으로 무리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굴러가는

‘관계의 공’을 중립으로만 돌려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왜 공이 자꾸 마이너스로 굴러갈까요?

그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하는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에 불편함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질투, 불안감, 비교의식 같은 감정은
이성적인 이유 없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 감정의 화살은 이유 없이 가장 잘 보이는 사람,
즉 ‘제일 잘해보이는 나’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설명한다고 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면 돌파보다
살짝 어수룩하게 넘기고,
때로는 ‘제가 적은 아닙니다’라는 뉘앙스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날 선 감정은 무뎌질 수 있습니다.


업무는 똑부러지게,
사람은 살짝 어수룩하게.


이 조합이 저에겐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갈 수 있었던 방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같은 상황이면

너무 정면 돌파만 생각하지는 마세요.


조금 돌아가는 길이,

더 지혜로운 길일 수 있습니다.
결국 실력은,
기회를 만나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