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돈이 없으면 배가 더 고프다

거지꼴로 돌아온 딸

by 조매니저

풍족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유럽 여행 마지막 3일은 정말 거지꼴이었다.

한국 오기 하루 전날 마지막 일정은 베르사유 궁전이었는데 궁전의 화려함이고 뭐고

추위와 배고픔에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당시 가진 돈으로 공항까지 가는 돈을 계산해 보니 두 끼 정도는 굶어야 할 것 같았다.


아빠가 늘 지갑에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돈이 있으면 배도 안고프다고

아빠 말이 맞았다.


배가 너무 고팠다.


사람이 배가 고파보면 창피함이라는 감정이 없어진다.


"저 파리 지하철 티켓 싸게 드릴 테니 사실래요?"

한국인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에게 다가가 남은 지하철 티켓을 팔았다.


가장 화려한 궁전 정원에 앉은 초라한 나.


이 상황이 재밌었다.

뭐라도 먹겠다고 뻔뻔하게 구는 나도 재밌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원룸에 도착해 그대로 14시간 정도 잠들었다.


따뜻했고 그 작은 원룸방이 너무 감사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

퇴근 후 나를 마주한 엄마는 기가 찼다고 한다.

내 몸에서 노숙자 냄새가 나서.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후

나의 [외국 타령]이 시작 됐다.

한번 나갔다와 보니 무서울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더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에서 나는 경쟁력이 없었다.

나름 부모님의 자랑인 지방 국립대 출신이었으나 영어, 중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전공한 문과생이었고 창업한다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은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다들 적어도 토익은 900점을 맞추던 시대였는데 나의 토익 최고 점수는 750점이었다.

거기에 당시 대기업에 입사해도 초봉이 3천만 원-4천만 원이었는데 학자금 대출에 우리 집 사정 생각하면 깜깜한 미래만 그려졌다.


이대로는 뭐도 안된다는 생각에

영어공부하면서 돈도 벌 겸, 외국 생활 스펙도 쌓을 겸, 더 큰 기회도 찾아볼 겸

나라에서 지원한다는 [정부 지원 해외 취업]을 있는 대로 찾았다.


주변에서 '토익이 그렇게 낮은데 되겠냐'는 비아냥 거리는 말들과

'네가 지금 해외 나갈 때냐'는 고나리질과

'갔다 오면 나이만 먹을 거다'는 걱정인척 까내리는 말들을 들으며


최종적으로

싱가포르와 미국

두 군데 정부 지원사업 해외 취업에 합격했고

별생각 없이 출국일이 더 빠른 싱가포르로 출국을 결정했다.


파산과 불임판정, 배낭여행, 싱가포르로의 출국 모든 것이 1년 안에 이루어졌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모두 해낸 1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