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내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릴 시절부터 엄마는 내 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했다.
너 돈방석에 앉을 사주래.
엄마가 다른 복은 다 없어도 자식 복은 끝내주는 사람이래. 자식이 되게 잘된대.
난 그 말을 믿었다.
내가 무조건 잘된다는데 안 믿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말을 계속 믿다 보니 이상하게 운이 좋은 사람인 것만 같았다.
아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 다 잘 풀릴 거라고.
싱가포르 첫 직장 생활도 꽤 운이 좋았다.
한국 백화점 아르바이트로 물건 파는데 아주 도가 튼 상황이었고
키가 크고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이라 눈에 띄었다.
대학가 근처에 자리 잡은 쇼핑센터였고 아기자기한 상품을 파는 여대생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였는데 마침 K-POP이 싱가포르에서 인기였다.
If you buy one, get one free
매장에 입장하는 모든 손님에게 따라붙어 프로모션 행사 코멘트를 해야 했는데
저 짧은 문장을 말하면 소녀들은
Do you know BTS?
라고 대답했다.
*바로 한국인임을 알아차릴 만큼 영어 발음이 구렸다.
2014년이었고 아이돌은 동방신기에서 멈췄던 상황이라 제품 이름인 줄 알았다.
누군지 모른다니 어떻게 모르냐며 노래고 영상이고 나에게 알려주기 시작했고 나를 보러 몇 번씩 방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매장 20대 여직원들도 텃새는커녕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한없이 친절했다.
손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영어를 어떻게 해야 덜 어색한지,
브랜드의 특징이 무엇인지,
싱가포르 손님 특징은 무엇인지,
모두 상세하게 알려줬다.
내가 담당하게 된 브랜드가 너무 고가의 명품브랜드가 아니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층과 일하는 직원들의 나이가 10대에서 30대로 어렸다.
유행처럼 번졌던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이 내가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역시 난 운이 좋았다.
업무 적응을 마친 후,
실적을 올리는데 집중했다.
기본급은 적었으나 직업 특성상 많이 팔면 더 벌 수 있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가 판매 실적을 크게 올려하는 상황이었고 직원 인센티브 프로모션이 빵빵했다.
손님들께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제일 빨리 문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팀원들을 많이 도왔다.
영어도 부족했고 아무래도 오래 일한 직원들보다 경력도 짧았기 때문에 배울 게 많았다.
밉보여서 좋을게 하나도 없었고 모두 친절했기에 나도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목표한 실적을 다 채운 날은 내 손님을 다른 팀원에게 보내기도 했고
한 손님이 3개 이상 구매하면 추가 인센티브가 있어서 팀원 손님이 두 개만 구매하면 옆에서 살살 바람을 넣기도 했다.
그러니 그들도 날 많이 도왔다.
그렇게 일 시작 3개월 차에 기본급만큼 인센티브를 받았다.
어떤 달은 한화로 4백만 원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한국에 돈을 보내 학자금 대출을 조금씩 상환할 수 있게 됐다.
역시 불평하며 포기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생긴다는 내 모토가 맞다며 기뻐했다.
들떴다.
그리고 5개월 차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1시간 이상 서있는 것이 힘들어졌다.
8시간 이상 서서 일해야 하는 환경이었는데 출근 후 40분만 지나도 주저앉고 싶었다.
일을 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쇼핑몰 1층에서 하지원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 행사를 했는데 2-3층까지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