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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Oct 12. 2020

커피따라 세계일주 - 샌프란시스코, 포배럴 커피

San Francisco, Four Barrel Coffee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로 떠나는 당일이었다. 그 전날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좋은 시간을 실컷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맛있는 음식들이 환상적이었다. 특히 Pier39에서 먹었던 부드러운 클램차우더, 육즙이 가득했던 Super Duper의 햄버거는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c)만얼 | 샌프란시스코의 맛집들


짠내투어라는 방송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Pier39의 클램차우더 식당에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주문을 하기 위해서는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눈치싸움이 필수였다. 우리도 간신히 주문을 한 다음에 먹을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다행히 자리를 잡고 나서 요리를 받는 곳에 가서 기다렸다.


차례가 다되어서 요리를 받으러 가는데, 앞에 있는 직원의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 참을 인(忍)을 다섯 개는 새긴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를 몇 개 담더니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옆에 있던 직원에게 자기는 이제 가봐야 한단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옆에 있던 직원이 안된다고 한다. 곧바로 주문받던 직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앞치마를 벗고 그 자리에서 나가버렸다. 


다른 사람이 바로 와서 미안하다며, 주문을 다시 확인하고 음식을 쟁반에 담더니 가져가면 된단다. 우리도 어리둥절한 채로 음식을 가져왔는데, 웬걸. 클램차우더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클램차우더와 비프차우더 1개씩, 샐러드와 샌드위치 1개씩만 주문했고, 그렇게 계산까지 마친 상태였다. 직원이 교체되면서 혼선이 생긴 것 같았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더더욱 불어난 사람들 사이를 도저히 다시 제치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뭐... 대신 정말 맛있게 먹어주자.





(c)만얼 | 포배럴커피 입구


포배럴 커피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점을 두고 있는 로스터리 카페이다. 2008년에 오픈했으며, 미국에 있는 다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처럼 이들도 농부들과 직접 생두를 거래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로스팅한 커피를 각종 회사나 레스토랑, 카페에 납품하는 구조의 사업을 하고 있다. 


포배럴은 자신들의 매장에서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노트북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가 없기로 유명하다.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꽤나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제공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따로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이 브랜드의 창립자 중 한 명은 어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That’s there for the coffee, not the free Wi-Fi, which doesn’t exist."

(존재하지 않는 무료 와이파이가 아니라, 커피를 위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다소 실존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는 커피가 와인이나 맥주, 그리고 음식과 같이 미식의 영역에서 평가받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본인이 진지하게 커피를 대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손님들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c)만얼 | 포배럴커피 안쪽에서 입구를 바라봤을 때



이곳도 사전에 방문을 하려고 미리 계획했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별개로도, 매우 특이한 점이 많은 브랜드라서 궁금하기도 했다. 로컬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일이 많아서 패키지 디자인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가끔은 그 디자인이 매우 기괴하기도 하다. 어쩔 땐 원두 패키지에 귀여운 신혼부부 일러스트가 있다가도, 그러다가 갑자기 어쩔 때는 무섭게 생긴 해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차에 모든 짐을 넣어 두었다. 혹시나 짐을 보고 차를 털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 눈에 잘 보이는 길가에다 주차해두고 카페로 들어갔다. 직사각형의 창고같이 생긴 매장이었는데, 앞뒤로 긴 모양이었다. 왼쪽 벽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바가 길게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큰 로스팅 머신이 카페의 중심을 잡고 있다. 


천장은 사이트글래스와 비슷한 모양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 중간중간에 있던 큰 유리창 사이로 부드러운 햇빛이 바 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지역 아티스트와 많은 소통을 하는 것 때문인지 벽에는 그림이 많이 걸려 있었고, 한쪽으로는 LP판이 가득한 꽂이도 있었다. LP꽂이 아래에는 플레이어를 통해서 매장 전체에 LP 음악이 흘러나왔다. 


(c)만얼 | LP가 가득했던 꽂이





순서를 기다렸다가 핫초코와 카푸치노,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매장 안에는 자리가 없어서 바깥에 있는 스탠딩 테이블에서 마셔야만 했다.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는 거친 면이 살아있는 도자기 잔에 담겨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친 느낌의 투박한 잔이 정말 좋다. 이런 잔들은 이가 살짝 나가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코팅되어 매끈한 면을 가진 잔들은 왜인지 모르게 시선도 잘 가지 않고 정이 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삐뚤빼뚤한 못난이 잔들은 오히려 더 눈이 가고 정이 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한쪽이 살짝 뭉개지거나 깨진 잔들은 더 그런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초보 수습생이 화구에 넣을 때 너무 힘을 줬나? 너무 열심히 닦다 보니 어디에 부딪혔나?'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작은 이야기 하나라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은 그냥 정이 간다. 



(c)만얼 | 못난이 잔에 담겨나온 맛있는 커피





커피는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좋았다. 고소한 우유와 진한 커피의 하모니는 언제나 옳다. 그런데, 핫초코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늘 과하게 달고 짠 미국 음식에 적응되어 있었는데, 이 핫초코는 과하게 건강한 느낌이었다. 핫초코라 하면 진한 단맛에 짭쪼름한 포인트가 국룰(?)인데, 이 핫초코는 진하긴 진한데 달지도, 짜지도 않다. 진한데 맹맹한 핫초코라니,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커피와 건강한 핫초코를 다 마신 뒤에 카페에서 나왔다. 나오기 전에 간단하게 프로젝트에 대한 인터뷰도 하고 페루산 원두도 구매했다. 이번에도 인터뷰가 끝난 후에 선물을 건네주니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매우 좋아하는 모습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카페를 뒤로하고 시카고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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