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는 배려

자기 자신은 없는 무조건적 타인의 편의 배려

by 매너티연


타인의 편의를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은 4대 성인들 말고 무조건적 사랑으로 베푸는 사람을 아마 없을 것이다. 배려를 미덕으로 여겨야 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종교적 관념이나 어떤 사회가 주도하는 신념은 뼛속 깊숙이 박혀서 진정성 없는 위선적인 면모를 추구하도록 했다.




갈비찜을 먹으러 갔다. 주말이라 가게에 손님이 북적북적했다. 우리가 식사할 자리를 찾아 착석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우리 테이블 오른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있었고 왼쪽 테이블은 좀 전까지 있던 손님이 식사를 완료하고 나갔다. 그때, 7명을 동행한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이들의 부모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들 때문에 이어 앉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 테이블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우리 옆에 있던 빈 테이블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 앉더니 아이들이 순수한 눈빛으로 우리가 식사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해서 ‘이거 우리가 옆 테이블로 옮겨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분노가 올라왔다. 자전거 여행을 하고 힘들었던 몸을 쉬면서 따뜻한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기다리는 이들이 옆 테이블에 앉아 우리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먹고 있는 와중에 자리까지 양보해야 한다니 귀찮고 짜증이 났다.


그 사이에 내 내면에 속 시끄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내면의 검열관은 착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리를 옆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열관은 나에게 ‘저들을 양보하지 않으면 단체로 나를 비난할거야’ 라고 두려움 카드를 건넸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간 나 자신을 속여온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싸움에서 적당히 타협했다. ‘착한 척 위선 떨지 않을 거야. 옮기기 귀찮아. 조용히 해‘ 라고 말이다. 결국,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양보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 즈음, 왼쪽 테이블엔 한 팀이 추가로 와서 가게 입장에서도 우리 입장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위선, 가식으로 무장했던 과거의 나였다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타인을 배려했을 텐데 말이다.


진정성 없는 배려와 자아를 외면한 양보는 결국 자신을 배신하는 꼴이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나의 신사적인 면모를 뽐내기 위해 요구하지도 않은 배려를 하고는 본인의 내적 욕망을 짓밟아 버린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많은 희생과 배려를 하고 살았으니 결국 나에게도 얻는 게 있겠지..’라며 결국엔 계산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겉은 착하지만 자신의 욕구에 대한 이해도가 없고, 행동에 대한 진정성 없이 종교나 어떤 사회적 신념이 이끄는 행동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다.

자신의 거짓 배려에 대한 결과를 늘 타인에게 기대해 보지만 충족되지 않고 끝없이 요구한다. 타인이 요구하지도 않은 배려를 하면서 말이다.

매 순간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세상이 자신의 욕구를 알아줄 거라며 암묵적으로 기대를 거는 건 모순이다.



__매너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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