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수단
가족이니까 이해해야지,
가족이니까 도와줘야지,
가족이니까 챙겨줘야지,
가족이니까 함께해야지,
부모니까 전적으로 도와줘야지,
부모니까 물려줘야지,
형제니까 서로 돕고 친해야지,
며느리/사위니까 배우자 부모에게 잘해야지,
자식이니까 효도해야지,
한국 사회에서 어느 곳에서나 듣는 위화감 없는 말이다. 그러나 말의 속성을 이해하면 통제의 수단이다.
'가족'이라는 주제만 나오면 뇌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합리적 근거도 없는 말이 새어 나온다. '가족이니까'를 서두로 요구사항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데, 의도는 통제 대상에게 은근한 부담감,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또한 자신의 통제 대상과 결속력이 끊기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각인시킨다. 기괴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던 대상(특히, 자식이나, 배우자)이 개성을 드러내거나 독립적인 면모를 드러내면 굉장히 불편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왔던 수단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통제 주요 대상
감정 쓰레기통(가족 험담, 우울, 불안, 정서적, 경제적 고민을 들어주는 대상),
경제적 의존 대상(통장, 지갑역할),
외부 이미지 강화를 위한 수단(화목한 가정,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이미지 유지),
스트레스 해소 역할(아동학대 또는 배우자 학대, 패륜),
자식이 자신의 자존감인 경우(학력, 성적, 직장, 결혼, 돈, 명예),
외로움과 소외 그리고 고립감을 채워줄 대상
티비에 유명인이 '아무도 믿지 말라, 심지어 가족도 믿지 말라'라고 연설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말에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라며 반박한다. 그 유명인의 연설은 가족이 핵심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한 선택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메인이 아니었지만, 그 사람에겐 가족을 믿지 말라는 말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가족이 가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겐 통제해 왔던 수단들이 더 이상 내 손바닥 안에서 주물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인간은 아주 복잡한 동물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숭고한 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식에게 끔찍한 집착과 질투를 그리고, 분노와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부모는 인간이기에 숭고한 사랑만을 줄 수 없다.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보호받고 싶은 대상이지만, 반면 멀어지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아주 작은 사회를 이룬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지만, 투정과 짜증이 용인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도 해야 함을, 형제자매와 다투며 서열을 정하고, 누가 무엇이 우월한지 가늠해보기도 하며 사회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엿보고 초석을 다진다. 그러고 나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라는 준비기간을 거쳐 진짜 차가운 사회로 나간다. 더 일찍 나가는 사람도 있고, 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또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가 탄생한다.
만약 성인이 건강한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이들은 관계에서 의존과 통제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가족에 대한 집착, 삶의 흥미 감소, 낮은 자존감, 경제적으로 의존할 대상 및 감정 해소 대상이 필요해서 은근한 압박, 통제, 가스라이팅, 집착, 세뇌를 통해 관계를 붙잡는다. 이때부터 가족이라는 개념보단 개인이 채우지 못한 자아를 타인으로부터 채우려는 기생 심리가 작동한다.
각 가족 구성원이 건강한 독립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니까'라는 명분으로 가스라이팅을 시전 하는데, 사회적 체면이나 윤리적 기준을 들이밀며 거부할 수 없도록 서서히 침식시킨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의 개별화 과정을 돕지 않고 독립은 생각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나지 못했고, 타인과 자신의 건강한 경계선을 구축해 본 경험도 없다. 그러니 그동안 당해왔고, 해왔던 습성을 통해 타인에게 엉겨 붙어서 괴롭히는 것이다.
건강한 가족의 개념
'가족이니까! ~ 해야 한다'라는 요구가 없다. 책임과 의무감을 통해 부담 주지 않는다.
그저 신뢰한다.
통제하지 않는다.
독립적인 개체로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존중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이끈다.
의존에는 엄격하게 대한다.
무관심도 아니고 집착도 아닌 먼 곳에 서서 그저 바라봐준다.
서로의 독립을 축하해 주며 행복을 지원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풍요롭다.
뉴스에 나오는 가족 간의 상속 분쟁, 금전 소송, 연예인의 가정사, 아동학대, 존속살해를 주제로 한 소식들은 "가족이니까~ 해야 해"라는 말을 전면 반박한다. 이렇게 무거운 사건들은 과거엔 더욱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현재는 통신의 발달로 SNS, 뉴스,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들에서 암묵적으로 가족이니까 용인했던 행패, 가스라이팅, 폭력의 실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간의 일들이 이제야 쉽게 노출되고 폭로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식들은 가족이니까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는 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이 되는 방법은 하나, 요구하지도 말고, 요구당하지도 말고,
각자가 건강하게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다.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