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과 공(空)

내현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개인의 성찰

by 매너티연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_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필사 책이나 유명한 구절만 훑고는 그의 책을 심도 있게 읽어본 적은 없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필독서를 읽지 않았다는 점이 자질 부족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심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경험한 곳이 니체가 말한 심연과 유사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든 구절,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심연은 도대체 무엇이고, 심연 속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지 두렵기도 하면서 궁금했다.


내현적 나르시시즘의 해부를 통해 가스라이팅, 방어기제, 수동공격, 도덕적 우월감의 뿌리를 찾으려면 집단적 무의식을 건드려야 한다. 내현적 나르시시즘 경향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러한 어두운 무의식을 나도 모르게 발견하게 되는데, 그의 무의식을 탐구하려 할 때 마주해야 하는 공간이 바로 집단적 무의식이었다.


집단적 무의식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두려움, 비합리적인 관념, 종교/문화/도덕/윤리적 신념, 생존, 죽음, 기아와 전쟁, 굶주림, 절박함, 정신병, 고통, 고뇌, 통제, 자살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고통을 함축시켜 놓은 것만 같다.


어린아이의 무의식은 부모가 만든다. 세상을 처음 접한 아이에게는 나쁜 경험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뱃속에서 머무는 기억은 무의식 속에 쌓이고, 부모로부터 접한 두려움은 자신의 두려움으로 남는다. 한마디로 개인의 무의식은 부모, 가족, 사회가 만든 두려움의 연장선이다.


무의식을 나탐(나 탐구생활, 인간의 무의식을 명료하게 짚어주는 유튜버)님은 집 지하창고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감정을 무의식에 억압해 둔 감정쓰레기들로 비유했다. 만약 인간이 두려움을 잘 해소했다면 집단 무의식이 만든 비합리적인 요소에 개인의 자유의지가 쉽게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연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의 무의식 저장소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심연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심연은 상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 상처는 치료법이 없다. 그런데 상처를 건드리면 아프다. 그래서 상처가 곪을 때까지 둔다. 그 방식은 애써 외면하기. 그게 인간의 생존 방식이었다.


내현적 나르시시즘의 무의식

의문을 남기는 그들의 화법, 행동 기저심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순간부터 과도한 분석이 시작되었다. 분석을 하다 보니 공통적 특성을 발견했는데, 이들의 기괴한 친절함과 수동적 태도는 모두 집단적 무의식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친절하지 않거나 단독행동을 보였을 때 단체에서 외면당하고 버림받는 수치심 때문에 무의식적 기제가 자신의 자아로 변모한 것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모두 한 공간으로 수렴한다. 이곳은 사념과 집착, 수치심에 기인한 관념, 통제적 사고가 집약적으로 뭉쳐있다. 집단이 얼마나 개개인에게 가스라이팅을 해왔는지, 물귀신 작전으로 건강한 독립체로 살지 못하도록 했는지 이곳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의식은 개인에서 가족, 가족에서 마을/부족, 국가에서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들은 아주 오래된 무의식을 건강하게 풀어내지 않고 서로에게 독이 되는 방식으로 묵혀두고 있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폭발하면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내현적 나르시시즘을 분석하게 된 이유

내현적 나르시시즘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살면서 '착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분화하지 못한 집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시점이다. 이는 나에게 분석 대상이 되었다. 그들을 분석하고 보니 내게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들처럼 착한 가면을 쓰면서 은근하게 요구하는 점도 있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