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과 솔직 사이

솔직해야 한다는 내면의 검열관

by 매너티연


사람들과 장시간 대화를 하다 보면 남아돌던 체력도 금방 떨어진다. 내면의 관찰자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해도 되는 말은 맞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지 항시 감시한다. 약속이 있거나, 모임이 있으면 일정을 잡기도 전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처음부터 자기 검열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나에겐 친구 험담이 굉장히 흥미로운 놀이였다. 누군가의 허물을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하는 건 마치 내가 더 우월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착각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가장 친했지만 가끔 상처를 주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완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활발하고, 솔직하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표현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와는 반대로 화가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목구멍에 뭔가 막힌 것처럼 말을 하지 못했고 어휘력도 좋지 않아서 감정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해 흥분하면 말을 버벅댔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화가 나면 눈물이 먼저 나와 인간관계에서 다툼이 두려워 속으로만 곱씹기 일쑤였다.


그 아이는 말싸움을 잘했다. 그래서 그 아이로부터 굴욕감을 느낀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 친구들이 모여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빈 놀이터에 모여 함께 험담을 했다. 하루는 한 명의 친구 집에 모여 그 아이를 험담했고, 그 결과 내부에 같이 욕을 했던 친구가 일러바쳤는지 험담했다는 사실을 그 아이에게 들켜버렸다. 그 사실이 들통났을 때, 모두가 각자 인정했다. 하지만 그 아이와 가장 가까웠던 나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뻔뻔하게 아니라고 발뺌했다. 친구들 모두 나를 지목하며 같이 욕했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그 일은 잊히지 않는다. 비겁하고 소름 끼치는 내 과거의 모습이 경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앞에서 하지 못할 말 뒤에서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생겼다. 그래서 겉으로는 "뒤에서 하지 못할 말 앞에서도 하지 마라"라며 다른 사람에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신념은 때때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험담을 하지 않는 일이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험담하는 사람을 더욱 많이 보게 되었고, 사회에 나가보니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함께 타인을 씹어댔다. 속으로는 '험담은 나쁜 거야. 비겁하고 못된 행동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꾸짖으면서 신념은 지키지 않는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타인을 험담하는 것이 괴로웠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맹렬하게 친구를 뒤에서 씹어댔던 경험은 여럿이 공통된 주제로 하나가 되는 기쁨과 간접적으로 그 대상을 처참히 짓밟는 희열감을 선사했다. 그런 희열이 성인이 되어서도 잊히진 않았다. 사회에서 만난 짜증나는 인간을 누군가와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건 사막에 오아시스를 찾은 것만큼 숨 쉴 구멍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험담을 할 때마다 마음속 괴로움은 올라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은 늘 내 가슴을 움켜쥐어 답답하게 했다. '너 또 앞에선 가식적이게 웃고 뒤에선 험담을 했네? 싫으면 앞에서 말하면 되지, 넌 정말 비겁해! 앞에서 말도 못 하는 겁쟁이야.' 라며 끊임없이 비난했다. 잠깐 동안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헐뜯었던 그 장면은 비겁한 자아가 내면 속에 한 명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런 장면들이 싫어 매번 내 행동을 검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서른이 되었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서서히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인가?'

'나는 이사람이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이 말은 너무 솔직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가?'

'이 사람은 싫은데 억지로 웃고 있는것은 아닌가?'


어린 시절 그런 나의 비겁한 모습을 보고 느꼈던 건 "앞에선 아무 말 못 하고 뒤에서 욕이나 하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아"였다. 하지만 그 신념은 나를 옥죄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해야 한다라는 검열 때문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이 어려워졌다.




가식과 솔직 사이에서 혼란이 온다면, 그건 여태까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면의 검열관에 의해 휘둘렸던 내 삶에 진정 나 자신으로 존재했던 적은 없었다. 솔직함을 위해 표현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과 말도 해야 했다. 그건 솔직한 게 아니었다. 그저 솔직한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의 가면을 씌운 셈이다.


내면의 검열관이 요구하는 솔직함은 비겁하고 겁쟁이인 나를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근거해 만든 신념 체계이다. 사랑받기 위해 솔직해야 하고 거짓된 사람이 되지 않아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부터 나왔다. 5학년의 겁쟁이였던 나에게 솔직하지 그랬냐고 꾸짖고 싶진 않다. 그 과정 속에서 험담이 무엇이고 지금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큰 깨우침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저 비겁하고 겁쟁이였던 나를 위로하고 싶다.

미움받을까 봐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해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을 넌 이겨낼 수 있다고..



__매너티연


그림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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