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 반대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13장: 네이버후드의 습관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2부 6장: 네이버후드의 습관


4월 26일.

기차가 멈췄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정민은 창밖을 봤다. 역사. 붉은 벽돌. 높은 천장. 철제 기둥.

유리 지붕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파리에서 기차로 세 시간 반. 탈리스. 빨간 기차.

짐을 챙겼다. 캐리어. 백팩.

플랫폼으로 내렸다.

공기가 달랐다. 파리보다 차가웠다. 바다 냄새. 운하 냄새. 축축한 냄새.

역 밖으로 나왔다.

운하가 보였다. 바로 앞에. 물이 반짝였다. 배들이 떠 있었다.

하우스보트. 사람들이 갑판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전거들. 자전거가 많았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많은 것 같았다.

주차된 자전거. 달리는 자전거.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정민은 서서 봤다.

마나시와 달랐다. 런던과도 달랐다. 파리와도 달랐다.

뭔가 달랐다.

뭘까.


숙소.

요르단 지구.

역에서 걸어서 15분.

걸었다. 운하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좁은 골목. 벽돌 건물. 3층. 4층. 창문마다 화분. 빨간 꽃. 노란 꽃.

작은 호텔. 운하변. 3층 건물. 가파른 계단. 네덜란드식.

체크인했다. 열쇠를 받았다.

방에 짐을 풀었다.

창문을 열었다.

운하가 보였다. 물. 배. 자전거. 사람들.

정민은 창가에 섰다.

뭔가 달랐다.

거리가 조용했다. 차 소리가 없었다.

그거였다.

차가 없었다.


저녁.

밖으로 나갔다.

걸었다.

요르단 지구.

좁은 골목. 운하. 다리. 또 골목.

가게들이 있었다. 치즈 가게. 꽃집. 빵집. 작은 서점. 카페. 자전거 수리점.

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달랐다.

뭐가 다르지.

정민은 걸으면서 봤다.

인도.

인도가 넓었다. 사람 세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네 명도 가능했다.

자전거 도로.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었다. 인도와 분리돼 있었다.

색이 달랐다. 붉은색. 벽돌색.

차도.

차도가 좁았다. 자전거 도로보다 좁은 곳도 있었다. 차가 거의 없었다.

정민은 멈춰 섰다.

주변을 봤다.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천천히. 멈춰서 이야기하고. 가게 앞에서 구경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인도에서. 엄마가 뒤에서 걸어오고.

노인이 지나갔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자전거는 많았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로 다녔다. 인도를 침범하지 않았다.

인도는 사람들 것이었다.

마나시가 떠올랐다.

하림지구 골목. 인도가 없었다. 있어도 좁았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지나다녔다. 배달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미래구. 인도가 넓었다. 하지만 아무도 안 걸었다.

지하 통로로 다녔다. 에어컨 나오는.

여기는 달랐다.

인도가 넓었다. 사람들이 걸었다. 멈춰서 이야기했다.

왜?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에 앉았다.

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 작은 잔.

밖을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노인. 아이. 강아지를 끌고 가는 사람.

유모차를 미는 사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다들 천천히 걸었다.

멈춰서 인사했다. 이웃인 것 같았다. 손을 흔들고. 몇 마디 하고. 다시 걷고.

정민은 메모장을 꺼냈다.

적었다.

‘암스테르담. 인도가 넓다. 차도가 좁다.’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멈춰서 인사한다.’

펜이 멈췄다.

‘왜?’



다음 날.

오전 열 시.

요르단 카페.

정민이 먼저 도착했다. 어제와 같은 카페. 창가 자리.

문이 열렸다. 바람이 들어왔다. 차가운 바람.

여자가 들어왔다. 오십 대 후반. 은발. 짧게 잘랐다.

안경. 둥근 안경. 스카프. 파란 스카프.

주변을 둘러봤다. 정민을 봤다.

다가왔다.

“정민?”

“네. 클라우디아 씨?”

“그래요. 반가워요.”

악수. 손이 차가웠다. 밖에서 자전거 타고 온 것 같았다. 볼이 붉었다.

마주 앉았다.

“커피 시킬게요.”

클라우디아가 주문했다.

네덜란드어. 빠르게. 웨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마실래요?”

“커피요. 아메리카노.”

주문이 끝났다.

클라우디아가 정민을 봤다. 안경 너머로.

“테드한테 들었어요. 클리블랜드 잘 봤다면서요.”

“네. 파리도요.”

“파리? 에마뉘엘 만났어요?”

“네.”

클라우디아가 웃었다.

“다들 아는 사람이네. 좁은 세계야. 도시 연구하는 사람들.”

커피가 왔다. 작은 잔. 김이 올라왔다.

클라우디아가 컵을 들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에서 뭘 보고 싶어요?”

정민이 생각했다.

“어제 걸었거든요. 요르단 지구.”

“어땠어요?”

“사람들이 천천히 걷더라고요.

멈춰서 인사하고. 아이들이 인도에서 뛰어놀고.”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보였어요?”

“네. 근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클라우디아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봐요.”

정민이 봤다.

거리. 인도. 자전거 도로. 차도.

“뭐가 보여요?”

“인도가 넓어요. 차도가 좁고.”

“맞아요. 그게 답이에요.”

정민이 클라우디아를 봤다.

“인도 폭이요?”

“네. 도시의 품질은 인도의 폭으로 측정돼요.”

클라우디아가 커피를 마셨다. 천천히.

“70년대까지 암스테르담도 차 중심이었어요.

도로 넓히고. 주차장 만들고. 자동차가 왕이었어요.”

“그랬어요?”

“네. 다른 도시들처럼. 미국처럼. 효율. 속도. 성장.”

클라우디아가 창밖을 봤다.

“그러다 아이들이 죽기 시작했어요.”

정민이 펜을 들었다.

“아이들이요?”

“네. 교통사고로. 70년대 초.

1년에 400명 넘게. 그중 상당수가 아이들이었어요.”

“400명이요?”

“네. 작은 나라예요. 네덜란드. 400명이면 엄청난 숫자예요.”

클라우디아가 정민을 봤다.

“그래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났어요.

‘Stop de Kindermoord’. 아이 살해를 멈춰라.”

정민이 적었다.

‘Stop de Kindermoord. 1970년대.’

“시위였어요?”

“시위였어요. 그리고 정책이 됐어요. 시민들이 바꿨어요.”

클라우디아가 커피를 마셨다.

“그때부터 바뀌었어요. 차도를 좁히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인도를 넓히고.”

"그게 50년 전이에요?"

"네. 50년 동안 바꿨어요. 조금씩. 매년. 매달. 매주."

클라우디아가 창밖을 봤다.

"우리 엄마가 그 시위에 있었어요.

'Stop de Kindermoord'. 스물두 살 때."

정민이 클라우디아를 봤다.

"그래서 이 일 해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엄마가 밀던 유모차 사진은 아직 있어요.

거기 내가 타고 있었거든요."

정민이 적었다.

‘50년 동안 바꿈.’‘차도 좁힘. 자전거 도로. 인도 확장.’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요?”

“네. 걷기 좋으니까. 멈추기 좋으니까. 이야기하기 좋으니까.”

클라우디아가 창밖을 봤다.

“도시 설계가 행동을 바꿔요.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문화가 돼요.”

정민은 적었다.

‘설계 → 행동 → 습관 → 문화.’

클리블랜드가 떠올랐다. 조셉의 말.

“구조가 습관을 보호해요.”

비슷했다. 또.


열한 시.

밖으로 나왔다.

클라우디아가 안내했다. 걸으면서.

“직접 보여줄게요.”

골목을 걸었다.

클라우디아가 멈췄다.

“여기 봐요.”

바닥을 가리켰다.

선이 있었다. 바닥에. 금속 선. 동그란 징이 박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경계선이에요. 여기까지가 테라스 구역.”

카페 앞이었다. 테이블이 있었다. 의자가 있었다. 선 안쪽에.

“규칙이 있어요?”

“네. 시에서 정해요. 테라스는 여기까지. 넘어가면 안 돼요.”

“왜요?”

“보행자 통로를 확보해야 하니까요. 최소 1.5미터.”

클라우디아가 인도를 가리켰다.

“저기 봐요. 사람들이 지나가죠? 테라스가 있어도.”

정민이 봤다.

카페 테라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걸었다. 유모차. 휠체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부딪히지 않았다.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1.5미터가 있으니까요.”

“그래요. 숫자예요. 측정 가능한 숫자.”

클라우디아가 다시 걸었다.

“도시의 품질은 감으로 안 돼요. 숫자로 해야 해요.”

정민이 적었다.

‘1.5미터. 테라스 경계. 규정.’‘숫자로 측정.’

정오.

다른 거리.

클라우디아가 멈췄다.

“여기 봐요.”

바닥에 또 선이 있었다. 이번엔 색이 달랐다. 노란색. 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건 뭐예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이에요.”

노란 점들. 튀어나와 있었다. 줄지어 있었다. 길을 따라.

“모든 거리에 있어요?”

“핵심 구역은 다 있어요. 규정이에요.”

클라우디아가 블록을 밟았다. 발로 느끼는 시늉을 했다.

“눈을 감아도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이게 있으면.”

정민이 적었다.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규정.’‘핵심 구역 전체.’

“이것도 숫자예요?”

“네. 블록 간격. 높이. 색상. 다 규정이 있어요. 밀리미터 단위로.”

클라우디아가 정민을 봤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어요. 규칙만 있어요.”

정민이 펜을 멈췄다.

“규칙이요.”

“네. 감동은 사라져요. 규칙은 남아요.”

파리에서 에마뉘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선언은 사라진다. 계약은 남는다.’

여기선.

‘감동은 사라진다. 규칙은 남는다.’

똑같았다. 말만 달랐다.



점심.

운하변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경계선 안쪽. 금속 선이 발밑에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샌드위치를 시켰다. 정민도.

햇빛이 따뜻했다. 운하에서 바람이 불었다. 물 냄새.

“질문 있어요?”

클라우디아가 물었다.

정민이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다. 치즈. 햄. 빵이 바삭했다. 삼켰다.

“한국에서는요.”

“네.”

“이런 거 없어요. 규칙이.”

“없어요?”

“규칙은 있어요. 근데 지켜지지 않아요.”

클라우디아가 물을 마셨다.

“왜요?”

정민이 생각했다.

왜?

“모르겠어요. 그냥… 안 지켜져요.

규칙이 있어도. 단속이 있어도.”

클라우디아가 웃었다. 짧게.

“규칙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측정을 안 해서예요.”

“측정이요?”

“네. 규칙을 만들고 끝이 아니에요.

지켜지는지 봐야 해요. 숫자로.”

정민이 펜을 들었다.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여기 테라스 경계선. 누가 관리하는지 알아요?”

“시청이요?”

“아니요. 카메라예요.”

“카메라요?”

“AI 카메라. 테라스가 선을 넘으면 자동으로 알림이 가요.

가게 주인한테. 메시지로.”

정민이 적었다.

‘AI 모니터링. 자동 알림.’

“그러면요?”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도 경고. 세 번째는 과태료.”

“얼마나요?”

“500유로부터. 반복되면 더.”

정민이 적었다.

‘경고 2회. 3회째 과태료. 500유로.’

“그래서 다들 지켜요?”

“네. 안 지키면 손해니까.”

클라우디아가 샌드위치를 먹었다.

“감동으로 안 돼요. 인센티브로 해야 해요.

지키면 이득. 안 지키면 손해. 그게 명확해야 해요.”

정민은 적었다.

‘인센티브. 지키면 이득. 안 지키면 손해.’

클리블랜드. 파리. 암스테르담.

다 같은 말을 했다.

구조. 인센티브. 측정.

감동이 아니라 시스템.


오후 세 시.

시청 건물.

클라우디아가 데려갔다.

“한 가지 더 보여줄 게 있어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적인 건물. 유리. 철제. 로비가 넓었다.

엘리베이터. 5층.

문이 열렸다.

방 하나.

들어갔다.

스크린이 있었다. 큰 스크린. 벽 전체.

화면에 지도가 떠 있었다. 암스테르담. 실시간. 움직이고 있었다.

“디지털 트윈이에요.”

클라우디아가 설명했다.

“도시 전체를 3D로 만들었어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돼요.”

화면에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점들. 수천 개.

“저건 뭐예요?”

“유동인구예요.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사람들.”

정민이 화면을 봤다.

점들이 움직였다. 골목을 따라. 운하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센서가 있어요?”

“네. 가로등에. 바닥에. 건물에.

익명으로 수집해요. 개인정보는 없어요.”

클라우디아가 화면을 조작했다. 터치스크린. 확대.

요르단 지구가 보였다.

“여기가 오늘 아침 우리가 걸은 데예요.”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카페 앞에서 멈추고. 다시 움직이고.

"이걸로 뭘 해요?"

"예측해요. 분석해요. 실험해요."

정민은 화면을 봤다. 점들이 움직였다.

마나시에 이런 게 있었나. 없었다. 감으로 했다.

'체감상 늘었다.' '느낌상 줄었다.'

그렇게 보고서를 썼다.

클라우디아가 다른 화면을 띄웠다.

시뮬레이션. 도로 하나를 막았을 때.

유동인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화살표가 움직였다. 숫자가 바뀌었다.

“이게 리빙랩이에요.”

“리빙랩이요?”

“실제 도시에서 실험하는 거예요.

작은 구역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효과를 보고. 좋으면 확산하고. 안 좋으면 되돌리고.”

정민이 화면을 봤다.

숫자들. 그래프들. 예측선.

“감이 아니네요.”

“네. 숫자예요. 측정이에요. 증거예요.”

클라우디아가 화면을 껐다.

“품질은 측정 가능한 단위로만 행정에 들어가요.

안 그러면 논쟁만 하다 끝나요.

‘좋은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끝없이.”

정민이 적었다.

‘품질은 측정 가능한 단위로만 행정에 들어간다.’

‘안 그러면 논쟁만.’


다섯 시.

시청을 나왔다.

거리에 섰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건물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운하에 노을빛이 반사됐다.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도움이 됐어요?”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요.”

“한국에서도 할 수 있어요?”

정민이 거리를 봤다.

인도. 자전거 도로. 테라스 경계선. 유도 블록.

50년 동안 바꾼 것.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말했다.

클라우디아가 웃었다.

“모르겠다가 시작이에요. 아는 척하면 끝이에요.”

손을 내밀었다. 정민이 잡았다.

“행운을 빌어요.”

“감사해요. 정말요.”

클라우디아가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자전거 도로로. 멀어졌다. 코너를 돌았다. 사라졌다.

정민은 거리에 서 있었다.

운하. 다리. 자전거. 사람들.

50년.

마나시는 시작도 안 했다.



저녁.

숙소.

정민은 침대에 앉았다.

창밖을 봤다. 운하. 불빛. 물에 반사된 빛. 일렁였다.

메모장을 펼쳤다.

오늘 적은 것.

‘인도의 폭 = 도시의 품질.’‘1.5미터. 테라스 경계. 규정.’

‘Stop de Kindermoord. 1970년대.’‘50년 동안 바꿈.’

‘감동 X. 규칙 O.’‘AI 모니터링. 자동 알림. 과태료.’

‘디지털 트윈. 리빙랩. 실험.’

‘품질은 측정 가능한 단위로만 행정에 들어간다.’

펜을 들었다.

새 줄.

‘마나시:’‘- 규칙 있음. 측정 없음.’

‘- 그래서 안 지켜짐.’

‘- 감동만 있었다.’‘- 감동은 사라졌다.’

적었다.

메모장을 봤다.

런던. 정례성.

클리블랜드. 구조와 습관.

파리. 계약과 책임.

암스테르담. 측정과 규칙.

다 다른 도시. 다 다른 방법.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정민이 적었다.

‘공통점:’‘- 감동으로 안 한다.’‘- 숫자로 한다.’‘- 지속된다.’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을 찾았다. 오늘 찍은 것.

바닥의 경계선. 금속 선. 동그란 징.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노란 점들.

운하. 자전거. 넓은 인도.

하나를 골랐다. 인도. 사람들이 걷는. 노인. 아이. 유모차. 개.

하린에게 보냈다.

사진 1장.

문장 1줄.

정민: 도시의 품질은 인도의 폭으로 측정된대.

보냈다.

잠시 후 답이 왔다.

하린: 인도요?

정민: 응. 넓으면 걷게 되고. 걸으면 멈추게 되고. 멈추면 이야기하게 되고.

하린: …

하린: 우리 동네 인도는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가는데.

정민이 화면을 봤다.

하림지구 골목이 떠올랐다.

좁은 인도. 오토바이가 지나다녔다. 사람들이 비켜섰다.

정민: 그래서 사람들이 안 걷는 거야.

정민: 걷기 싫으니까.

보냈다.

하린: 그럼 어떻게 해요?

정민이 생각했다.

정민: 넓히면 돼.

하린: 그게 쉬워요?

정민: 안 쉽지. 50년 걸렸대. 여긴.

하린: 50년이요?

정민: 응. 근데 시작은 했잖아.

보냈다.

하린이 답하지 않았다.

1분.

2분.

답이 왔다.

하린: 시작이라도.

하린: 해야겠네요.

정민은 화면을 봤다.

정민: 그래야지.

정민: 그래야 50년 뒤에 뭔가 남겠지.

보냈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봤다.

운하. 불빛. 물에 반사된 빛.

50년.

마나시는 시작도 안 했다.

시작하면?

50년 뒤엔 뭔가 남을까.

모르겠다.

모르니까 시작해야 한다.

정민은 눈을 감았다.

클라우디아의 말이 떠올랐다.

“모르겠다가 시작이에요. 아는 척하면 끝이에요.”

맞았다.

마나시에서 아는 척을 많이 했다. 정민도. 다들.

상생협약. 도시재생. 스마트시티. 좋은 말들.

아는 척했다. 다 안다고.

아무것도 몰랐다.

정민은 눈을 떴다.

창밖. 운하. 불빛.

이제 안다.

모른다는 걸.

그게 시작이다.


-계속-



"감동은 사라져요. 규칙은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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