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아줌마로 행복했던 날들
우리 동네에 치킨 집을 운영하는 예쁜 아줌마가 있었다. 저녁 먹고 바람 쐬러 간다며 동네 한 바퀴를 돌 때 꼭 그 치킨집 앞에 멈춰 서, 아무 표정 없이 닭만 튀기는 그 아줌마를 보는 즐거움이 하루의 낙일 정도로 나는 그 아줌마를 마음속으로 연모했다.
짧은 커트머리에 맑은 눈,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코의 이국적인 마스크, 어쩌다 가끔씩 웃는 모습이 내겐 너무 이뻐 보여 수많은 날들을 그 아줌마와의 연인을 꿈꾸곤 했다.
가끔 일부러 그 집에 들러 후라이드 치킨에 맥주 한잔을 하면서, 나는 그 아줌마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 보며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을 차가운 맥주로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은 결국 나만의 즐거움이자 쾌락이었을 뿐. 그녀와의 눈맞춤조차 할 수 없었던 실망감에 밀려오는 허탈만 가득했다.
간혹 그 아줌마가 자기 남편일지도 모를 남자와 그 일행들과 합석하여 웃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아름다움을 보는 만큼 내 가슴엔 야릇한 질투가 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치킨집이 문을 닫고 수리를 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아뿔싸, 이 집의 주인이 바뀌었구나’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고,
내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에 몹시 허둥거리며 이제 그녀를 어쩌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런 한편, 아니다 어쩌면 신장개업을 하기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 고매한 분위기에 걸맞는 격조 높은 인테리어로 새단장하여 더 밝고 맑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리라. 그러면 나는 그녀를 더욱 럭셔리하게 바라볼 것이고,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지었는데…
어느 날, 오색 줄이 그 가게 앞에 치장을 하고 나레이터 모델 둘이서 음악에 맞춰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었다.
‘주인이 바뀌었나? 새 단장인가?’ 하는 의아심을 가득 안고 그리로 향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는 내 발걸음은 새로 내걸린 간판을 보고 털썩 주저앉을 만큼 힘없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바뀌지 말았으면 했는데 간판에 그려진 오징어, 생선 등을 보는 순간 ‘횟집이구나, 바뀌었구나.’
그러면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집은 어딜까? 이 부근일까? 아니면 다른 동네에 사는 것은 아닐까? 이제 어떡하지? 아, 첫사랑의 실연만큼이나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그런 실망감이 내 가슴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차츰 그녀의 생각에서 멀어져 갔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사람의 잊힘은 3개월을 넘으면 비로소 그 추억에서 서서히 벗어난다고 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던 듯 그렇게 시간의 흐름속에 그녀에게서 자유로웠다.
한데 약수터로 향하는 내 발길과 내 시선을 그대로 멈추게 만든 어느날 아침,
우리 집 뒤 D아파트 뒤쪽 문을 열고 나서는 그녀를 발견하고 멈칫 섰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는 내 까만 선글라스속의 눈빛을 그녀는 알아차렸을까. 고개를 돌리는 듯했는데 다시 내게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은 환했다. 나는 얼떨결에
“일 안 하시니까 얼굴이 훨씬 보기 좋네요.”
어떤 연유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게 나는 그 당시의 얼떨떨함에 아주 오래된 지인처럼 자연스러운 인사를 했다.
“예? 저를 아세요?”
얼굴이 좋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예뻐졌다는 말일 수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녀도 그 뜻에서 예외일 수 없었고, 예쁘다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웃으며 손짓으로 오래전에 그녀가 하던 켄터키 집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아하… 예.” 하며 수줍은 웃음을 짓고는 서둘러 내 앞길을 밟고 갔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치킨집에서 피워 올랐던 마음의 불꽃이 되살아났다.
잠시의 순간이지만 나는 그 아침이 행복했다. 그리고 자꾸만 멀어져 가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움만 간직했다.
또 헤어짐.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짐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겐 한때 꿈꿨던 연인이었고, 그 사연을 내 가슴 깊숙이 심어 놓은 사랑이었기에 나는 그녀와의 멀어짐을 헤어짐으로 표현하며 아쉬워했다.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만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를 했기에, 그 이후로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은 실로 자주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나의 눈길은 어김없이 그녀의 발자취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바라보곤 했다.
오늘 아침, 어느때와 다름없이 약수터로 길을 가는데 이삿짐센터 트럭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를 본 순간 나는 또 직감적으로 그녀와의 이별을 겪어야 했다.
이삿짐 꾸러미의 움직임을 행여 다칠세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비록 나혼자만의 관음적 사랑이 헤어짐 앞에 순수로 포장됐지만, 아침 빈속에 쓴 담배 한 대를 길게 내뿜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끝내야 하는 나는 쓸쓸했다.
안녕, 내 사랑. 다시 또 이런 애틋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발자취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지켜볼 수 없었던 허전함과 쓸쓸함.
나는 발길을 돌려 내 갈 길을 가며 아무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의 허허로움을 다시 피워 문 담배 연기에 실어 보냈다.
사랑은 아픔이라 했다. 쓰라림으로 가득한 찬바람에 어인 눈물 한 자욱이 내 마음인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사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작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나기도 한다.
우리는 만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와 그렇게 이별했다.
ㅡ 2009년 겨울 어느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