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인심과 동네의 온기에 대하여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섰는데 동네 부식가게에 '콩나물 2.000원 이상 판매합니다'라는 문구가 A4위에 또박또박 안내되어 있었다.
70세가 넘는 부부가 부식가게를 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생활 환경이 그리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네여서 주민들은 말 그대로 이웃사촌들이고 그들이 주고객이다.
말한마디 한마디가 가십거리여서 탓이되고 칭찬이 되는 사랑방 역할도 하는 곳이라 항상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한때는 이 가게옆에 똑같은 부식가게가 나란히 붙어 경쟁하듯 부식거리를 넉넉하게 주면서 인심을 쌌다. 아니 인심을 얻기에 바빳다.
박리다매가 바탕인 재래시장의 철학은 '덤'이었다. 그것이 이 가게의 큰 인심이었다.
콩나물 2천원 이상 팝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이 집의 가장 큰 인심은 콩나물 천원어치가 바로 아래 재래시장 콩나물가게들 보다 두배는 많게 푹푹집어 주는 양이었다.
그런 영향이었을까, 그 옆의 부식가게가 어느날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제 독점이 되었고
고객이 양분되었던 한 점포가 없으졌으니 전보다 주인 내외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연세 든 주인 내외의 손길만으로 넘쳐나는 손님들을 상대하기란 역부족 같아 보였다.
새벽장을 봐야하고, 배달도 해야되고, 야채 손질과 주인 아주머니는 온갖 동네 수다를 다 받아줘야 했으니 하루가 삼일이 되도 부족하지 않았을까.
주인내외의 연세를 봐서 그 일은 무리였다. 누구를 채용해야 할 상황이었다.
어느날 젊은 부부인 듯한 남녀가 새벽시장을 봐 온 트럭을 주차하고 트럭 적재함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내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합류했던 것이다. 그후 판매하는 양이 전보다 조금씩 줄어 든 느낌이 들었지만 사람이 늘어났으니 인건비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아들 내외가 합류하고 난 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수다꾼들의 발걸음도 확연히 줄어 들었다.
그렇지만 가게는 여전히 성황인 듯 바이크와 함께 젊은 친구가 또 합류했다. 배달로 사업을 확장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그저 장사가 잘되구나 생각하는 걸로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A4에 쓰여진 친절한 안내문을 보고 씁쓸했다.
이 가게 양옆으로 사방 150m 거리에 중형마트가 세개나 있고 재래시장도 있으며 청년들의 스타트업 야채가게들이 여럿있다.
마트는 격주에 한번씩 쎄일행사를 하니 연중 쎄일이 진행중이고 청년들의 스타트업 점포들도 매일 쎄일같은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덤으로 한줌 더 집어주는 미안함에 '언니 천원 올리세요' '사장님 이천원씩 파세요' 할 지 몰라도 그런 사람이 단골에서 떨어져 나갈 확률은 크다.
덤으로 주는 콩나물 한줌에 속으론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미안함에 남말 하듯 툭 내뱉고는 서서히 발길을 끊는 비열함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기인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몇번의 자영업에서 경험했다.
2.000원은 요즘 시대에 극히 작은 돈이다. 하지만 그 작은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붙느냐가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리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 동네 사랑방처럼 모여 살고, 재래시장과 청년들의 스타트업, 그리고 중형마트까지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서 콩나물 2.000원 가격이 혹시 사람들의 발길을 잦아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사라지는 것들을 슬픔으로 표현하고 또한 사랑하라고 했다.
콩나물 2.000원 이상의 가격표가 덤 한 줌으로 이어지던 동네 인심과 사랑방이 서서히 사라져 가게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 슬픔이 다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