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이의 단상

AI시대의 댕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by 하리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면 ‘삐리리’ 소리와 함께 2층에 사는 말티즈와 푸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한다.

“왈왈! 멍멍!”


계단 두세 개를 오르면 말티즈의 짖음은 금세 잦아들지만, 푸들은 3층 우리 집 문을 열 때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말티즈는 이미 내 냄새를 알아채고 ‘아, 저놈은 나를 잡아갈 놈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푸들은 1년이 넘도록 내 냄새를 구분하지 못한다.

문헌 속 푸들은 천재견인데, 도대체 어디서 저런 푸들을 데려온 건지, 짖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의문이 꼬리를 문다. 때론 노트속의 기억들을 지우는 것처럼 내 냄새 자체를 지우는 건 아닌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댕이엄마인 2층 아줌마에게 “사람도 못 알아보는 잡종개를 어디서 데려왔느냐”고 묻기도 뭣하다.


하루는 그 엄마가 와도 푸들이 억세게 짖으니까,


“이년이, 엄마도 모르고 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 말을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어느날 길에서 앙증맞게 까불던 비숑을 보고 주인에게


“이 개 암놈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여자예욧!”


이 한마디에 나는 당황했다.

암캐를 ‘여자’라고 부르는 말은 그날 처음 들었다. ‘댕이엄마’는 흔해도, 개를 ‘여자’라 하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개 한 마리에게도 수식어가 달라졌다.

우리가 어릴 적엔 동네 잡종개들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개판 세상이었다.


삼복더위가 기승일 때면, 계곡으로 향하는 개들도 많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요즘은 주인 없이 혼자 다니는 개를 보면 ‘길을 잃었나’, ‘유기견인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개도 주인을 잘 만나야 팔자가 핀다.

유모차, 아니 개모차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상념에 젖은 듯한 댕이를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댕이들 사이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는 걸 녀석들이 느끼고 있을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의 세상이 변하듯, 반려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댕이들의 세상도 달라진다.


머지않아 AI지능을 가진 로봇개가 태어나 “왈왈 멍멍” 대신 “좋다, 싫다”를 말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시끄러운 짖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댕이들은 반려의 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댕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멍멍’ 그 소리마저 복고의 감성으로 그리워할 날이 올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