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는 생선, 꼬랑치 이야기
청보리 싹이 올랐다. 변함없는 자연은 혹독했던 추위를 잠재우고 드푸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푸르른 싹이 봄의 생명이라면, 바다의 봄은 잔잔한 잔물결로 시작된다. 햇살이 또르르 흘러 윤슬로 빛나는 바다가 봄의 서막을 알린다.
겨우내 묶여 있던 작은 어선들도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켜고, 움츠렸던 어부들의 손짓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만물의 생동이라는 표현을 애써 빌리지 않더라도, 봄은 활기를 뜻하는 생명의 언어이다.
이처럼 메마른 땅의 쑥이 봄을 알리면, 바다에는 도다리가 봄을 시작한다. 도다리와 쑥이 만나 봄의 활기가 된다. 땅과 바다의 훌륭한 봄 건강식인 것이다.
주말마다 남파랑길을 이어 가고 있는 요즘, 오륙도에서 출발할 때는 ‘언제 다 걸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벌써 마산으로 접어들었다. 진해에서 마산을 넘을 때 지천으로 깔린 쑥을 캐어 도다리국을 끓여 점심식사를 계획했다.
도다리를 사러 자갈치시장에 들렀는데, 나무상자에 널브러지듯 누워 있는 꼬랑치를 발견했다.
순간, 눈이 똥그레졌다. 오, 꼬랑치!
표준어는 ‘등가시치’다. 등에 가시가 있어 그렇게 불리지만, 실제로는 가시 같은 침은 보이지 않는다.
경상도 말에 ‘꼬랑’이라는 말이 있다. 도랑을 뜻하는 방언이지만, 그 어감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나는 그래서 꼬랑치가 ‘꼬랑에 사는 물고기’인 줄 알았다. ‘꼬랑’이라는 말에 물고기를 뜻하는 ‘치’가 붙어 꼬랑치가 된 것이라 짐작했는데, 실은 꼬리를 감은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꼬리를 뜻하는 ‘꼬랑지’ 혹은 ‘꼬랑대기’의 꼬랑에 치가 붙은 것이다. 서부경남에서는 '장개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꼬랑치의 기다란 모습을 보고 긴 長을 붙인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저인망 어선에서 이맘때면 무던히도 많이 잡혀 오던 꼬랑치였다. 그때 나는 ‘꼬랑치’라는 이름에서 어딘지 모를, 깨끗하지 못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신은 만물의 생명에 일장일단을 부여했다.
그때 이름이 꼬랑치가 아니라 등가시치였더라면, 그래서 그 맛과 영양을 더 많이 즐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자연산 메기가 자양강장제로 좋은 식자재라면, 메기를 닮은 꼬랑치도 바다의 좋은 영양이다.
서부 경남에서는 보리가 필 때 이 꼬랑치가 가장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진득하게 배는 제철이라 한다. 실제로 미역국을 끓이면 뿌연 깊은 맛과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다. 소고기 미역국 못지않게 영양이 많고, 그래서 남해안에서는 산모의 건강까지 책임을 졌다.
살이 토실토실 올라 오돌오돌한 식감은 ‘바다의 메기’라 해도 손색이 없고, 자연강장제로서의 효능도 충분하다.
생선회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분이 적은 꼬랑치의 식감은 탱탱하고 쫄깃하고 담백한 맛으로 횟감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매운탕은 다른 어떤 생선도 따라올 수 없다. 감자나 무를 굵게 썰어 넣고 조림을 하면 밥이 절로 넘어간다.
이처럼 맛있고 영양 가득한 꼬랑치 맛도 5~6월, 두어 달뿐이며, 그마저도 생산량이 극히 적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다.
일장일단의 장점이 이렇게나 많은데, 단지 못난 이름 때문에 멀리했던 게 후회스럽다. 그러나 이미 때는 지났다.
그래도 남파랑길을 걸으며 옛날을 회상하고 맛과 영양을 듬뿍 안겨준 꼬랑치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쑥과 함께한 도다리가 봄을 알리는 전령사였다면, 보리와 함께한 꼬랑치는 봄의 절정을 가리키는 하나의 대명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