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술뱅이는 어디로 갔을까
술뱅이라는 이름이 참 묘하다. 왜 허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술뱅이라 불렀을까.
이름의 유래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술 맛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식하다보니 그만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한잔 술을 마시면 안주가 필요했을텐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쉽게 잡히다 보니 급한 술안주로는 최고였을 게다. 그런 짐작으로 어떤 술 좋아하는 사람이 붙여 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 술뱅이의 학명은 용치놀래기다. 온몸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작은 입을 뽀로퉁 내민 모습은 영락없는 세침데기다. 그렇지만 그 세침데기 같아 보이는 입에는 앞이빨이 두드러지게 돌출되어 있다는데, 먹이를 물었을 때 말고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있기에 볼 수가 없다.
그 이빨이 용의 이빨처럼 보인다 해서 용치(龍齒)놀래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닷속 바위 틈 사이를 재빠르게 오가며 주변을 살피는 눈빛에는 생존 본능의 경계심이 어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몸을 번쩍 비틀어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지만, 잠시 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래 바라볼수록 그 안에 숨은 날렵함과 영리한 생존 본능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입고 있는 보호색도 화려해서 시선을 사로 잡는다. 대담한 원색 컬러가 아프리카 전통의상이나, 인디언 추장의 깃털관을 떠 올리게 한다.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아가며, 수컷이 죽으면 암컷 중 가장 큰 녀석이 수컷으로 성전환해 보스가 된다.
이렇게 자연이 만들낸 성전환의 유연함이 놀랍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성전환은 트랜스젠더가 부러워 할 것이고,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암컷을 거느린다는 점을 사람 사는 세상에 비유한다면 남자들이 부러워할 일이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생선들은 장난감 같은 친구들이었다. 대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낚시줄을 묶고 작은 자갈을 주워 봉돌로 매달고, 낚시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워 넣으면 빛의 속도로 술뱅이가 문다.
그 술뱅이는 또 다른 물고기를 잡는 미끼가 되기도 했고, 머리와 뼈는 짓이겨서 실로 나무 작대기 끝에 칭칭 감아 돌틈 사이의 작은 칠게를 잡기도 했다.
술뱅이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컬러를 가졌지만 너무 흔해서 색상 값을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은 활어로 kg당 3만 원을 호가하는 맛있는 횟감이다. 끈적한 액체가 묻은 듯 미끄덩해서 손질하기가 다소 귀찮긴 하지만, 그 육질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다.
매운탕이나 조림을 하면 생선살을 숟가락으로 퍼듯이 떠야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포근하다.
또한 프라이팬에 구워도 맛있지만 나무젓가락이나 대꼬챙이에 끼워 일본의 이로리구이처럼 해도 운치가 있을 것 같다.
바다의 석회화로 술뱅이의 거주지이자 놀이터이고 먹이 식탁이었던 해초 숲이 사라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술뱅이의 개체수도 줄어 들고 있다. 대나무 한 그루에 낚시바늘을 매달아 바닷가 아무 곳에나 넣으면 ‘톡톡’ 두서너 번의 입질로 따라 나오던 그 많던 술뱅이의 추억도 인간의 환경 파괴속에 묻혀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