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커피향

세월따라 변한 커피와 나

by 하리

흐린 날 커피 향이 함초롬하게 느껴진다.내가 이런 커피를 즐길 줄이야 꿈엔 들 생각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일때문에 거래처를 방문하면 여기저기 할 곳

없이 내놓는 게 믹서 커피였다.

지금이야 생수와 쥬스류의 음료, 그리고 티백을 이용한 차종류를 다양하게 내 놓지만 그때는 믹서 커피 하나였고, 하루에 몇군데 거래선을 방문하다 보면 좋던 싫던 먹어야 하는 그 커피가 하루 예닐곱 잔은 족히 되었다.


다방이란 말도 이젠 촌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언어의 어감도 격세지감을 느끼 듯 달라지나 보다.

스타벅스를 별다방, 엔제리너스를 천사다방이라 부르며 이땅에 정착했다면 아마도 다방이란 말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일상에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 내렸을 터인데, 그 다방이 스타와 엔젤의 등장에 밀려 이제 추억으로만 떠 올려야 할 어울리지 않는 촌스런 단어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약속이 있어 다방에 가면 설탕과 프림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어떤 곳은 연유를 듬뿍 넣어 커피를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기교를 부리기도 했었는데 아마 그런 커피를 만든 방법이 오늘날의 카푸치노와 라떼의 원조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다만 오늘처럼 이렇게 흐린날에 친구나 연인으로 마주 앉아 짙은 커피 향을 맡으며 분위기에 해낙낙했던 시간들이 있긴 했다.

되돌아 가서 본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그 믹스 커피의 성분이 아마 내 체질과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믹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이상하게도 머리가 심하게 아팠고 입안의 개운치 않은 텁텁함이 싫었다.

어느날 마음이 심란해서 흐느적 거렸을 때 문득 커피 향이 그리웠다. 흐린 날 커피 향이 가득했던 젊은날들의 기억에서 그 심란함을 이길려는 어떤 것을 커피 향에서 찾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커피를 마셨다. 머리가 아프고 입안의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감수하고 먹어봤다.

믹스 커피가 아니고 맑은 커피였는데 어떤 커피인지 몰랐다.

아메리카노라든지 에소프레소라든지 라떼니 카푸치노니 마키아또니 그런 커피의 종류가 있는 곳엘 약속이 있어 가면 그 이름이 뭔지도 몰랐고 어떤 커피가 내게 맞는지도 몰라 황당스러웠다.

아메리카노가 뭔지 에소프레소가 뭔지 알게 된건 TV에서 나오는 커피 프로그램에서 비로소 알았다.

그리고 그 후 커피숖 어디를 가든 나는 자신있게 아메리카노를 찾았고 그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마시니 머리도 아프지 않고 개운치 않은 텁텁한 입맛도 없어 한잔씩 즐겼지만 여전히 라떼니 카푸치노 혹은 마키아또는 어떤 것인지 몰랐고 어떤 맛인지는 더욱 몰랐다.알 필요가 없었다.

몇년전에 바리스타 학원에서 커피 교육을 조금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작은 배움마저 써먹지 않았으니 트랜드에 민감한 커피가 내게 익숙해 있을리가 없었다.


다만 종이 필터를 사용하는 드립 커피는 가끔 집에서 내려 먹는데, 참 알 수 없는게 사람이라더니 내가 이렇게 커피를 내려 마실 줄이야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다.


늙어 가니 이것도 세상에 대한 편승인가? 핸드 드립한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져 흐린 날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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