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인지 족쇄인지,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 대하여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하늘은 벽에 잘려 있었고,
빛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몫이었다.
떠나야만 자유일까, 남아야만 생존일까.
그 넝쿨이 뿌리인지 족쇄인지는
떠나려 할 때만 드러난다.


살아서는 안 되는 땅이 있다. 숨이 막히고, 벽마다 오래된 울음이 배어 있으며,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곳. 서울의 어느 구석, 다 무너져가는 판자촌의 지붕 너머로 고층 빌딩들이 치켜올라 있다. 낡은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그 유리벽을 바라봤다. 유리벽은 빛을 반사하며 더 먼 세계를 비추는 듯했지만, 그 빛이 발목에 닿을 일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의 넝쿨은 주거다. 집은 머무름과 안정의 장소이기보다 출발선과 결승선을 미리 그어버리는 족쇄가 되었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단단한 그늘과 기름진 흙을 품은 자리에서 시작하고, 다른 이는 뿌리 내릴 흙조차 없어 흔들린다. 햇빛을 차지한 넝쿨은 더 높이 뻗어 오른다. 그늘에 사는 자들의 발목은 넝쿨의 뿌리에 감긴다.


세대와 계층의 고착은 이 도시의 관습이다. 주소와 학군, 부모의 재산과 인맥이 태어난 순간부터 삶의 방향을 정한다. 누군가는 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전력질주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숨막히는 골목 끝에서 제자리걸음을 배운다. "노력하면 바뀐다"는 말은, 넝쿨의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한 번도 내려다본 적 없는 이들의 말이다.


떠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떠나려면 자본이 필요하고, 그 자본은 규칙을 지킬 때만 주어진다. 그 규칙은 넝쿨을 보호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을 더 깊은 그늘로 끌어내린다. 넝쿨에서 벗어나려 당길수록 뿌리는 더 깊이 박힌다. 발목이, 더욱 단단히 옥죄여온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나. 결국 그들은 익숙함에 길들여졌다. 속박을 안정이라 부르고, 불평등을 현실이라 부르며, 계급의 사슬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힌다. 그러나 그 균형은 오래가지 않는다. 중력은 언제나 무거운 것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그 무게는 늘 같은 이들의 어깨 위로 떨어지기에.


구조가 먼저 흔들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은 제자리에서 발을 굴리는 일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야한다. 불평등을 현실이라 부르는 무심함이 사라지고, 타인의 발목에 감긴 넝쿨을 외면하지 않는 눈이 필요하다.


나에게 떠남은 여전히 자유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자유는 대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야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떠나기를 주저한다. 대신 발목을 감은 넝쿨을 쓰다듬으며 산다.

그 넝쿨이 족쇄인지

아니면 생존을 가능케 하는 뿌리인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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