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벽의 고독은 쓸쓸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가장 나였다.
버려진 듯한 순간에도 나는 자유롭게 존재했다.
고독은 내가 버려졌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증거일까. 모두가 잠든 새벽, 인기척 하나 없는 거리를 홀로 걸을 때 세상은 낯설게 고요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늘어선 그림자들은 나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누구의 시선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맛본다. 방 안에 홀로 앉아 조용히 숨결을 세어보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고독은 결핍과 해방을 동시에 품고 그 양극의 감정은 내 안에서 충돌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던져진 존재'라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 속으로 던져진다.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시대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태어난 장소조차 선택하지 않은 채, 이미 '여기 있음'을 강요받은 존재가 바로 우리다. 그에게 인간은 '현존재'로서 늘 세계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홀로 서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나는 이 개념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던져짐'이라는 단어는 차갑고 무심한 세계의 잔혹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것은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그 순간 나는 고독하게도 주체적이다.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는 자각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물을 수 있다.
고독은 먼저 결핍으로 다가온다. 관계 속에서만 확인되는 나의 존재는 고독 속에서 흔들린다. 아무도 곁에 없는 순간에 나의 말은 메아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사람들 속에서 안도감을 얻고는 홀로 남겨졌을 때 심연 같은 외로움에 빠져든다. 아렌트가 말했듯 인간은 본래 정치적 존재다. 우리는 타자와 함께 말하고 행동할 때 존재가 증명된다. 그래서 고독은 결핍처럼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우정의 단절, 사회적 연결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마치 내가 사라져버린 듯한 감각을 남긴다. 고독 속에서 나는 쉽게 무의미에 휩싸이고, 자유보다는 상실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독은 자유의 조건이 된다. 고독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귀환하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평가도, 기대도, 강요도 없는 자리에 홀로 앉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와 마주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 "인간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만난다."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쓸 때, 혹은 새벽의 거리를 걸을 때 오히려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독은 때로 차갑지만, 그 차가움은 타인의 온기에 가려져 있던 나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나를 억누르던 무게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해방의 순간이기도 하다.
고독은 결핍이자 자유다. 결핍으로서의 고독은 나를 흔들지만, 동시에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자유는 홀로 설 수 없는 자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 존재는 풍요로워지지만 그 전제에는 고독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독은 인간의 숙명적 조건이자 역설적 선물이다. 두려움과 해방, 상실과 가능성이 맞닿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실존을 경험한다.
나는 여전히 고독을 두려워한다. 새벽의 거리를 걸을 때면 쓸쓸함이 먼저 나를 덮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쓸쓸함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아무도 나를 규정하지 않고, 어떤 시선도 나를 구속하지 않을 때,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한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짐이지만 그 짐을 짊어질 때만 비로소 자유가 열린다. 고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나는 결핍 속에서 자유를, 상실 속에서 해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역설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홀로이기에 자유롭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