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하지 않았기에, 더 온전히 나인 순간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던져졌기에 자유롭고, 유한하기에 무한히 의미 있다. 당신에게 고독과 불안은 짐인가,
아니면 자유의 증명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왜 이 시대, 이 땅, 이 가족 속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늘 당혹스러워진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강요받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인간을 '현존재'라 불렀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던져짐이란 곧 우리가 삶의 무대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서게 되었음을 뜻한다. 나는 배우이되, 극본을 쓰지 않은 채 이미 무대에 올라와 있는 셈이다.


던져짐에 대한 자각은 불편하다. 부모를 고르지 않았고, 태어난 시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우연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 때로는 불공평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이 던져짐은 단순한 구속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선택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정하지 않은 조건 위에서 나는 나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던져짐은 숙명인 동시에 자유의 토대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불안을 동반한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단순한 두려움으로 구분했다. 두려움이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라면, 불안은 대상 없는 무게다.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밀려와 가슴을 죄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불안은 삶이 가진 근원적 불확실성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나를 각성시키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불안은 늘 나를 흔든다. 허나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진정한 나를 마주한다.


현존재는 죽음을 향한 존재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 말했다. 누구도 타인 대신 죽어줄 수 없으며, 오직 나만이 나의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삶은 절실해진다. 언젠가 끝날 것이기에 오늘이 소중하고, 유한하기에 지금 무겁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목격했을 때, 오히려 내 삶이 더 선명해짐을 느꼈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현재를 붙잡게 만드는 거울이었다.


결국 현존재란 던져진 조건 속에서 불안을 감내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이 자각은 차갑지만 따뜻하다. 내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서야 한다는 무거운 요청을 받았기에, 나는 오히려 내 삶을 스스로 빚어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불안을 두려워한다. 던져짐의 부당함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무게 속에서 나의 길을 찾으려고 한다. 언젠가 사라질 삶이기에, 지금 나는 더욱 나갑게 살아야 함을.


던져졌기에 자유롭고, 유한하기에 무한히 의미 있는 것. 그것이 현존재로서의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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