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사랑은 불가능할까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사랑은 언젠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시작하는 용기 아닐까.
당신에게 사랑은 가능한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사랑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불가능하기에 더욱 간절히 붙잡게 되는 욕망일까. 모든 관계는 결국 끝을 향해 달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극소수의 기적일 뿐이다. 대부분은 도달하지 못한 짝사랑으로 남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되거나, 혹은 기억하기도 싫은 파국으로 끝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끝이 예정된 사랑을 기꺼이 시작하는 걸까?


스피노자는 사랑을 "기쁨의 원인이 된 외부 사물의 관념"이라고 정의한다. 타인을 통해 불현듯 찾아오는 기쁨,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외부에 기대어 생겨난 감정이기에 상대가 변하거나 사라지면 사랑은 흔적조차 없이 무너진다. 사랑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실의 가능성을 내포한 감정이다. 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지는 집과 같이. 그렇다면 사랑은 가능한가. 아니면 애초부터 불가능을 전제로 한 욕망일 뿐인가.


사랑은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발생하는 기쁨이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우연한 만남을 진리의 장으로 만드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 우연은 예기치 못하게 일상을 흔들며,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나 또한 누군가를 바라보는 순간, 사소한 거리의 풍경이 낯설게 빛나고, 시간을 재는 분침이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듯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칙칙했던 하늘은 푸르러 보였고, 평범한 대화조차 시상이 되었다. 사랑은 삶을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이요, 나를 다른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가능성이었다. 결국 사랑은 간으성이다. 가능성이기에 우리는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의 문턱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파국을 내포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근본적으로 '나와 결코 합쳐질 수 없는 타자성'으로 규정했다. 타인은 나와 다르며 끝내 다다를 수 없는 절대적 거리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사랑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겠다는 환상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는 좌절 사이에서 흔들린다. 사랑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어긋난 순간들이 있다. 옆에 있음에도 마음은 수천 리 밖에 있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경험. 가능하다고 믿으며 시작했지만 끝내 불가능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고통. 사랑은 이러한 역설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가능할 것 같기에 시작하지만, 불가능하기에 파국으로 기우는 것이다.


사랑은 순간의 열정 속에서 영원을 약속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언제나 유한하게 소멸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은 언젠가 차갑게 식고, 영원할 것 같던 맹세는 시간의 풍화 속에 금세 본모습을 잃는다. 사랑은 언젠가 곪아가며 상처로 남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모해버린다. 그렇게 사랑은 끝내 불가능한 욕망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랑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다운 것이 아닌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쉽고, 너무 안전하다면 그것은 욕망도 열정의 대상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불가능성 속에서만 사랑은 영원히 가능해 보인다. 상실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기꺼이 손을 내밀게 만드는 힘. 언젠가 파국에 이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불가능성 때문에, 사랑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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