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진짜 위험은 날개를 잃는 순간이 아니라,
그걸 당연하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다.
이제 박제는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 숨쉬는 채로 매일 박제된다. 셀카 속의 웃음, 짧은 영상의 몸짓, 몇 줄의 문장과 피드. 그 모든 조각이 나라는 전체를 대신해 세상에 전시된다. 마치 유리관 속의 나비처럼, 날개는 그대로지만 더 이상 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천재만이 박제되었다. 그들의 글과 말, 얼굴과 목소리가 기록으로 남아 죽은 뒤에도 끝없이 회자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박제가 된다. 차이는 단 하나. 우리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그 유리관 안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기록이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잘라내어 내어놓고, 그 잘린 조각이 나의 전부가 되길 묵인한다.
저항도 예외는 아니다. 원래는 체제의 목줄을 끊으려던 언어와 몸짓이었을터이다. 하지만 이제는 팔릴 만한 디자인과 구호로 바뀌어 포장된다. 불편해야 할 목소리는 멋진 해시태그로 변한다. 벽에 적힌 급진적 문장은 인스타 감성 배경 위에 걸린다. 체제를 흔들던 외침이, 어느새 체제의 상품이 되어 잘 팔리고, 잘 소비된다. 한때 불씨였던 말이 안전한 장식품으로 박제되는 순간.
이 시대는 우리를 살아있는 채로 죽인다.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고, 팔로워를 늘리고. 그 과정에서 전체의 나는 사라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다만 삶의 캡처본을 관리한다. 그러한 조각들이 모여 만든 나는 편집된 인물이다. 정제된 표정과 안전한 발언만을 허락하는.
그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은 날것의 표정, 조율되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위험할 만큼 솔직했던 말들이다.
진짜 저항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왜곡되거나 잘려나간 조각 속에서 불편한 목소리는 사라진다. 체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온도의 언어만 남고, 그 온기 속에서 사람들은 안도한다. 칼날이 빠진 저항은 듣기 좋고, 불타지 않는 불꽃은 오래 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유리관 속에서 살아있는 척하는 나비는 결코 다시 날 수 없다는 것을. 천재만이 아니라 모두가 박제가 되어가는 이 시대. 진짜 위험은 날개를 잃는 순간이 아니라, 그걸 당연하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