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형벌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자유는 해방인가, 또 다른 짐인가


카페 메뉴판 앞에서 음료를 고르는 순간부터, 인생의 갈림길에서 전공을 택하거나 사랑을 시작할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늘 선택 앞에 서 있다. 그 앞에서는 종종 숨이 막힌다. 자유란 원래 이토록 무거운 것일까.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라고 말하며 자유와 구속의 역설을 제시했다. 그의 말은 자유가 단순한 가능성의 확장이 아니라, 구속을 전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 선택한 뒤 그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인간.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란 달콤한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회피할 수 없는 형벌에 가깝다.


물론 자유가 주는 긍정적 의미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가능성이 확장된다는 뜻이다. 매일 마시던 녹차라떼 대신 낯선 아샷추를 선택해 새로운 맛에 즐거워했던 순간, 휴학을 결심하고 삶의 궤적을 바꿨던 순간, 사랑을 시작하며 새로운 감정에 행복해했던 순간. 그 모든 순간순간들은 내 삶을 다시 그려나갈 수 있게 만들어준 가능성의 증거였다. 니체는 이를 "아모르 파티(amor fati)", 곧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이는 주어진 삶을 원망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기꺼이 긍정하고 껴안는 태도를 말한다. 즉, 니체의 시선에서 보자면 자유의 무게는 기피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야말로 인간의 위대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가 늘 가볍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노는 걸 선택했을 때 느꼈던 불안감. 사랑을 선택했지만 끝내 후회로 돌아왔을 때의 공허함. 자유는 늘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사르트르의 핵심은 바로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비롯된다. 절대적 기준이나 신의 명령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야 하며 그 무게조차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자유롭기에, 내 불행에도 책임이 있다." 이 자각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각성하게 만든다. 타인이나 운명에 떠넘기던 삶에서 벗어나, 나의 불행조차 내 선택의 결과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가장 순도 높은 자유의 증명이다.


자유는 결코 고립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규정하고 얽어맨다는 뜻이다. 이처럼 자유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시선 속에서 더욱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대학 전공을 택했을 때 따라붙는 부모의 기대, 직업적 선택이 가져오는 사회적 평판, 사랑의 결정을 두고 주변에서 쏟아지는 평가. 사회가 설정한 성공의 기준은 나의 선택을 끊임없이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자유는 홀로 감내해야 할 짐일 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증폭되는 압박이기도 하다.


자유는 해방이자 동시에 형벌이다. 그 역설은 인간을 지독하게도 괴롭히지만, 역설 속에서만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자유의 무게는 피할 수 없는 짐이다. 하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간다. 자유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고통을 감내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유를 통해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나는 여전히 선택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그러나 그 망설임조차 내가 자유롭다는 증거이다. 언젠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나의 길을 택하겠다는 의지. 후회를 각오하고서라도 삶을 스스로 빚어내겠다는 갈망. 그 다짐이야말로 자유의 짐을 감내하는 나의 방식이다. 나는 자유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자유를 향해 끝내 걸어갈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