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뒤에야 드러나는 무게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우리는 잃어버린 순간에야 깨닫는다.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이 내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재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존재는 왜 부재 속에서만 드러나는가.

나는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내게 가까이 있었는지를 알았다. 늘 곁에 있었을 때는 공기처럼 당연했기에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들. 하지만 사라진 자리에서, 그 익숙했던 온기와 소리가 돌연 사라진 걸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것이 내 삶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 걷던 거리를 혼자 걸었다.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 늘 마시던 카페, 함께 웃던 벤치. 사소했던 풍경들은 하나같이 결핍의 표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부재는 단순히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를 더 강렬히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존재가 본래 은폐되어 있다고 했다. 있을 때는 보이지 않고, 사라질 때에야 빛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뒤에야 나는 그의 존재가 내 안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를 알았다. 오지 않는 연락,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 부재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부재는 존재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롭게 그 존재를 드러낼 뿐.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는 결코 나에게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다. 떠난 뒤에도 타자는 여전히 내 안에 현존하며 나를 부른다. 그래서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지속이다. 떠난 이후에도 나는 그를 매일 새롭게 불러내고, 그 부재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그 존재를 체감한다.


상실은 고통이다. 그 고통은 내 일상을 갈라놓고, 평범했던 순간들을 낯설게 바꾼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얼마나 깊이 사랑했고, 얼마나 진하게 살아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잃어버림은 상처였지만, 그 상처 속에서 나는 존재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모든 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에 더욱 빛난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한다. 상실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삶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잔혹하면서 아름다운 방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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