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 최선을 다해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가능한 한 나의 언어로 감정을 꺼내 보이는 것. 그런 마음은 자꾸만 어긋난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대에게 읽히고,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나의 말에 덧붙여진다. 진심은 왜 자꾸 엇갈리는가. 왜 타인의 마음에 다다르지 못하는가.
나는 평생에 걸쳐도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건 사실 오만한 착각이다. 이로인해 타인이 나의 말을 내 의도 그대로 이해하길 바랐다는 것 또한 어쩌면 오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말한다. 모든 해석은 오해를 포함한다고. 말은 내가 하더라도, 그 의미는 타인의 삶과 언어 위에서 새롭게 다시 쓰인다. 진심은 나의 것이지만, 그 해석은 언제나 타인의 몫인 것이다.
자크 데리다는 덧붙인다. 모든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언제나 차연 된다고. 여기서 말하는 차연이란 차이와 지연을 결합한 의미로, 기호와 다른 기호 사이의 차이와, 그 의미가 확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지연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이처럼 말은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어긋난다.
그래서 나는 침묵보다 말이 더 무서웠다. 그 어떤 말도 나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했고, 때로는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나를 정의해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돌아본다면, 내 진심을 전하는 방식 또한 온전했는가 자문하게 된다. 진심은 내용만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어떤 리듬과 감정과 언어로 건넸는지가 상대에게는 전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자주 후회를 한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조금만 더 숨길 걸 하고. 하지만 그러면 또 말을 하지 않은 내가 미워졌다. 결국, 어떤 선택도 내 마음을 온전히 지켜주지는 못한 것이다.
진심은 너무 말랑하고 흐릿해서 누구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부터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말을 고르고, 마음을 꺼내고, 다시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가끔, 아주 가끔은 그 마음이, 기적처럼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정확히 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