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9 22:42:13
< 마크롤렌즈 지음 | 강수희 옮김 | 추수밭 펴냄 | 2012.11. >
27살부터 새끼늑대를 데려다 11년 같이 생활하다 늑대를 떠나보내기까지~
사람보다 늑대에게 더 많은 정을 주고 같이 달리고 생활하면서 엮은 늑대다이어리겸, 철학적 사색의 편린을 엮은 책. 기대보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동물에 대한 입장은 '체화된 인지론'이다. 즉 모든 생물은 타고난 존재_결정적. 운명론적 존재_가 아니라 환경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_동물을 의미하나 동물을 나누는 기준은 애매하다_을 존재 자체로 보고 샤르트르는 서운하겠지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종우월적 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본질에 충실한 동물의 원초적입장을 존중하라고 주장한다.
흔히 우리에게 늑대는 전통적으로 어두운 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오인되는데 그리스어로 Lukos인 늑대는 빛이라는 뜻의 그리스어Leukos와 비슷하고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자 늑대의 신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저자는 늑대를 빛과 연관지어 '인간영혼의 빈터'로서 우리가 규정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 숨은 이면, 즉 우리가 주장하는 인간이 아닌 실존하는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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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말과 악의
늑대는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서 늑대는 문명사회에 맞지않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들이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영장류의 사회적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다. 다른 사회적 동물에 비해 유난히 발달한 영장류의 지능은 두 가지 필요, 즉 상대보다 더 교묘한 계략을 짜고 더 철저히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에 따라 발달했다. 자연에 대한 놀라운 이해와 지적.예술적 창조성 등은 모두 그에 따른 결과일뿐이다.
한편 인간의 특징인 사악함은 고의적 악의의 결과인데 인간은 스스로 악의 가능성을 조작하며 자신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족한 도덕성을 변명하고 있다.
2. 계약과 신의
도덕성과 문명의 근간이자 정당성에 대한 사회계약의 실제모습은 어떠한가? 사회계약은 권력에 대한 집착과 기대이득을 위한 의도적인 희생에 근거하고 있다. 도덕성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타인과 무리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정의구현과 신의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이다. 우리 삶의 중요한 관게는 이해득실에 따라 계산된다. 계산이야말고 계약의 본질이자 영장류의 본질이요,영장류를 위한 영장류에 의한 발명품이다. 그러나 늑대_동물_는 계산하지 않는다. 먼저 신의가 있다. 우리 인간의 영혼 속에 오래도록 잊혀지고 있던 깊은 구덩이_그 구덩이 속에는 영장류가 되기 이전의 우리가 살고 있는_를 파내기 떄문이다.
3. 영원과 순간
인간은 시공간에 지배되어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산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의 행로에서 선상의 어느 한 지점인 목표와 과제로 연관되는 삶의 의미는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설정하며 결국 도달한 의미의 끝인 죽음을 향해 가게 된다. 바로 인간실존의 근본적인 고통이요. 키엘케고르가 음미한 죽음에 이르는 고독이란 병이다. 우리는 순간 자체만을 즐길 수 없다. 순간은 끊임없이 앞.뒤로 유예되어 버리고 현재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결국 현재의 순간은 유예되어 시간 속에 퍼져있다. 그러나 늑대에 있어 생은 직선형이 아닌 영원회귀 서클형이요, 따라서 순간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 자체로 완전하며 삶의 의미는 삶 전체에 걸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
4. 시지프스와 인생의 의미
시지프스 이야기에 의하면 삶의 의미가 목적이라면 우리는 그 목적을 절대로 달성하면 안된다. 이것은 삶의 의미를 하나의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으로 생각하는것이다. 흔히 우리는 삶의 의미를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소유와 연관짓는다.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피조물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순간에 있다. '순간에 충실하라' 바로 이 순간들이 인생 '최고의 순간'_존재의 지향점이 아니고 삶의 누적 또한 아닌 장구한 세월 속에 흩어져 있는_우리의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며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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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지은이는 늑대와 얽힌 자기 사색에 동감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당연히 무리가 있을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런 저자의 기대를 무시할 수 없어 몇 가지 생각나는 점.
1.인간의 시회적 지능의 근본 바탕에 속임수와 계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해도 뛰어난 지적. 예술적 창조작품까지 계략과 속임수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하는?
2.늑대를 비롯한 생명체가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종의 특성에 따른 것이지 늑대의 실존과는 거리가 먼 사항이다. 이를 같은 레벨에 놓고 논하기는 무리??_ 사르트르는 늑대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3. 리니어가 아닌 영원회귀 서클로 삶의 과정을 본다는 것은 종교적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더욱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_다람쥐 쳇바퀴를 연상해 보라._ 그보다는 계단식 리니어 삶의 패턴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코스의 목표와 과제를 달성한 다음 다음 단계로 도약, 다른 삶의 의미를 천착하는 삶, 가능태로서만이 아닌 대자적 삶의 바람직한 형태라 여겨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