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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 Oct 12. 2021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었어요.

언제는 목소리가 커서 시원시원하다며



 "설렌다. 두렵다. 나 친구 없어. 다들 친한 것 같은데 나만 아는 아이들이 없네. 담임 선생님 괜찮으면 좋겠다. 쉬는 시간에 너네 교실에 놀러 갈게." 


캐캐 묵은 옛날 것을 뒤져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신기한 20년 전에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았다. 내가 보낸 메일을 볼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지만 친구들이 보내온 이메일의 내용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엿볼 수 있었고 나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들은 고작 20년이라는 마음이 들게 아주 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엔 좋은 일도 있고 아픈 일도 있다. 학기초에 반이 바뀌면 아이들은 모두 설레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이 바뀐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지옥 누구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새 학기에 친구들을 사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통 선생님들이 출석을 부르거나 간단히 말을 걸 때 재치 있는 내 목소리와 문장이 아이들을 웃게 했고, 아이들은 내게 어떤 기대를 하며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학기초에 빠지지 않고 하는 자기소개도 발표라면 자신 있는 내가 아이들을 꽤 즐겁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먼저 친구 하자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실 나는 여러 명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1:1로 친하지 않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굉장히, 매우, 극도로, 두려워했다. 어떤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낯설어서 말 거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 탓에 조금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아우라의 친구와 자리배정을 받으면 나는 말이 사라졌다. 그 친구는 심심해 죽겠다며 면전에 대놓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한편 마음을 나눈 친구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목소리가 큰 탓에 수업시간에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도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그만 떠들라 일렀다. 재밌었다. 야자시간에 친구들과 명랑하게 떠들고 걸려서 선생님께 혼나는 순간에도 웃고 즐거워했던 순수함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2학기가 되자 내게 먼저 손 내밀 었던 친구 한 명의 주도로 나는 은따를 당했다. 이유도 몰랐다. 갑자기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밥을 함께 먹으러 가던 친구들은 눈치를 주었고, 체육시간에 시범을 보일 때면 그전에 떠들고 웃던 애들이 내가 시작하자마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히 했다. 그 무리에서 내가 은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은 체육시간에 내가 공을 굴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습다며 웃었는데 그땐 그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투명인간 취급을 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소심해 이유도 묻지 못한 채 잔뜩 주눅이 들어 생활했다. 1 년 뒤 그 무리 중 일부가 내게 사과를 했고,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목소리가 크고 오버를 자주 해서 짜증 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몇 개월간 나는 지옥을 맛보았다. 꿋꿋하게 이겨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같은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휩쓸림 없이 나를 나로 대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 나는 따라 일어나곤 했다. 그럼 그것조차 욕하는 아이도 있었다. 1년이지만 두 명의 친구가 진심으로 화해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쉽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는 말과 함께. 이유를 찾으려 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치려고 했다. 고치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때 당시에는 생각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또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이 친구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나는 또 혼자가 되고 눈치를 보며 친구도 없는 아이라는 시선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은 안다. 사람이 이유 없이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싫증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면 하루 종일 붙어있는다. 늦어도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함께 듣고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은 뒤 석식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시간까지 적어도 밤 9시. 거의 열두 시간을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러면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더 군다가 어리고 오만한 마음을 달래는 일은 십 대에 더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싫은 부분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상대방과 잘 지내려는 노력보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괴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던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와 함께 지내면 나까지 은따를 당하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아이도 있었을 거고,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수 중 다수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해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상관하지 않는 마음의 근육도 꽤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건들만 연속으로 일어났다면 난 이런 마음을 갖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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