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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 Oct 18. 2020

나도 캠핑

그냥 야영이지 뭐

 남편과 내가 갔던 첫 캠핑은 2020년 나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편은 일중독에 가깝다시피 일을 열심히 하고, 나는 쉬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둘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싸움을 거듭한 결과가 남편의 생일, 나의 생일, 그리고 결혼기념일은 무조건 시간을 내어 맛있는 것도 먹고 쉼을 주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책임감 강한 남편을 만나 축복이란 생각을 하지만 다신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아무런 추억 없이 시간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같은 날에 휴일을 맞추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꼭 맞추지 못할 때도 있지만 늘 가정이 우선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합쳤다.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자신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가정을 위한 것이라 일 하는 것이 아무리 짜증 나고 힘들어도 우리가 함께 미래를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내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일도 하고 싶지가 않고 기운이 빠진다고. 우리 목표는 같은데 시점이 다르고 방법도 달라 합의점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을 부수기란 어려운 것이고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되면 둘 중 한 명의 희생이 필요한데, 일방적인 희생은 행복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라는 느끼는 바가 있기 때문. 


그렇게 떠나게 된 첫 번째 캠핑. 캠퍼들의 지식을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캠핑 카페에 가입을 했다. 여기저기 주변에도 캠핑을 떠날 거라고 떠들고 다녔더니 각자의 캠핑 경험들을 공유해 주었다. 남편도 직장에서 많은 동료들이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시크릿 스팟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맨 몸으로 부딪히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WHY NOT? 그래서 텐트도 사고, 텐트 밑에 깔 매트도 사고, 캠핑의자 등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캠핑의 꽃,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서 파이어링도 필수로 구매했으며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봤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전구 등도 샀다. 의도치 않게 두 가족과 함께 떠나게 되었다. 남편과 둘이 떠나기로 한 장소에 친구들이 따라오게 된 것이다. 한 가족은 캠핑을 자주 다녀봤던 사람들이고, 다른 한 가족은 우리처럼 처음인데, 급하게 텐트도 구매했다. 첫 캠핑이라 매우 설레었다. 많이 준비해서 도착한 캠핑 사이트에서 친구들이 숯이 있는지, 소금이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볼 때마다 "저 있어요! 나 가지고 왔어!"를 외쳤다. 우리가 빠트린 물품은 역시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고기를 굽고 술판을 벌이더니 밤 열두 시가 다 돼도록 술판은 끝날 줄을 몰랐다. 보름날이라 많은 별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달이 뜨기 전 은하수도 보고 별똥별도 보고 그다음 밝은 달도 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출도 보고 커피도 마셨다. 전에 생각했던 커피 마시기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지만 캠핑에서 일몰, 모닥불, 별, 일출 보기는 완료했으니 아주 만족스러운 캠핑이었다. 씨끌벅적한 캠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씨끌벅적한 캠핑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좋았다. 


결혼기념일. 둘이 떠나는 2박 3일 캠핑. 1박 2일은 아쉽다는 마음이 동했다. 호수로 떠났던 지난 캠핑과는 달리 비치로 떠났다. 꼼꼼하게 장비를 챙기고 마지막 물건까지 차에 실은 후 집 안을 빙~ 둘러봤다. 빠트린 물건이 없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완벽해! 신나게 출발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사서 차에 싣고, 술도 사고 마트에서 갑자기 생각난 부탄가스! 챙겨 오지 않았지만 마트에서 떠올린 것이 행운이었다. 텐트는 설치가 비교적 쉬운 원터치다. 텐트를 치고 차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데 아뿔싸 테이블을 안 가져왔다. 오초 간 아이컨텍과 정적. 캠핑 가서 책 편하게 읽으려고 침대에서 사용하는 조그마한 테이블도 가져갔는데 그걸 테이블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캠핑의 꽃인 모닥불! 아뿔싸 불을 피울 수 없는 사이트였다. 분명 홈페이지에는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다. 숯이랑 장작을 열심히 준비한 남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이내 "다음에 쓰면 되지 뭐" 하고선 작은 테이블 위에 버너를 놓았다.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가스불이 자꾸 꺼질 것 같아 테이블 위에 깔 리넨을 텐트 한쪽면에 달고, 다른 면은 해먹으로 바람을 막았다. 고기도 맛있게 구워지고, 술도 술술 넘어갔으며 해가 뉘엿뉘엿 졌다. 남편이 어릴 적 피서 갔을 때 항상 이런 분위기였다며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말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 기분 좋은 남편이었다. 그에 나는 어릴 적 집이 가난한 편이라 피서를 1박 이상 가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둘이 온 캠핑은 말 그대로 여유와 사색. 말없이 가만있어도 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자고, 바닷가 뛰놀다가 수다 좀 떨고 책도 읽고 그렇게 보냈다. 둘째 날 밤에 비가 내렸다. 천막으로 사용한 테이블보와 해먹은 모두 젖었고, 텐트 앞에 내놓았던 물건들도 흙탕물에 오염되었다. 텐트를 걷을 때는 맑았다. 트로피칼 날씨는 그 점이 좋다. 보통 새벽에 비가 오고 활동하는 시간에는 맑은 편이다. 다음 캠핑에 비가 와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챙기고, 테이블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주머니,주머니에 산만하게 챙긴 물건들을 담을 수 있는 큰 가방도 하나 마련해야겠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캠핑에 먹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방처럼 사용할 트레이도 마련하자고, 뭐 결국 아이템의 문제인가? 처음은 처음대로 두 번째는 두 번째대로 즐거운 캠핑. 그리고 다음 캠핑이 기대되는데 이거 캠핑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다. 남편 말대로 캠핑이 뭐 별건가 야영이지. 즐거움의 주체가 누구인가만 생각하면 비교할 일도 주눅 들거나 기분 상할 일도 없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리면 귀엽게 느껴지겠지. 지금 야영을 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피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남편처럼. 사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귀여운 우리의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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