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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솔 Oct 07. 2023

클레멘타인이 조엘을 꼬실때 마시던 '봄베이 사파이어'

영화와 술 이야기 <이터널 선샤인>

정확히 20살, 나는 한창 사랑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을 그 나이에 이 영화를 만났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 사랑에 빠지게 되거나 이별을 하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거나 외로운 기분이 들거나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거나 할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았고 지금까지 20번 정도는 보았다. 어쩌면 더 많이.


'이터널 선샤인' 좋아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나에게도 최애 영화중에 하나이며 아직은 이 영화가 재미 없었다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포인트는 서로 다르고 느낀 감정들도 다양해서 이 영화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봄베이 사피아이어'라는 '진'의 한 브랜드가 이 영화에 등장한다. 지금부터는 간단하게 '봄베이'라고 칭하겠다. 물론 처음 봤을때는 이 술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단순히 무언가를 마시는 장면이라고만 생각되었고 그 술이 봄베이라는것을 알아차린것은 거의 10년정도는 지나서였다. 


바텐더 경력이 차츰 쌓이고, 세상의 수많은 보틀들이 눈에 익어 익숙해 지다보니 보틀 쉐입이나 색깔, 라벨 디자인만 대충 슥 봐도 어떤 술인지 알만한 시기가 되어서야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마시던 술이 봄베이로 만든 칵테일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이 함께 마시는 술 일 뿐만 아니라 클레멘타인이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다. 실제로 클레멘타인은 가방에 조그만 봄베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카페에서 커피에 타먹는다.



스치듯이 너무 잠깐 나오긴 한다. 위의 장면 2초 정도가 전부다.


왜 하필 봄베이 일까? 

세상에 많고 많은 술 중에서 클레멘타인이 좋아하는 술을 봄베이로 설정한 이유가 뭘까? 




봄베이의 영롱한 파랑색은 클레멘타인의 이미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클레멘타인은 머리색을 자주 바꾸는걸 좋아하는데 영화 초반 기차에서 조엘을 만났을 당시 머리색이 파랑색이었다. 


이 차갑게 느껴지는 파랑색은 클레멘타인의 감정과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쿨하고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며, 약간은 사람을 경계하는 날카로운 느낌을 잘 드러내기도 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당시 클레멘타인의 머리색과 마시는 칵테일의 이름은 블루 루인(Blue Ruin)이며, 그 칵테일을 만드는데 쓰이는 스피릿 마저 영롱한 파랑색 보틀의 봄베이사파이어로 설정한것은 클레멘타인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을까?


위스키도 보드카도 다른 술도 아닌 '진'이라는 점도 나는 마음에 든다. 감독은 분명 '보드카'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춥다. 배경이 겨울이기도 하고 기억을 지운다는 소재 자체가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준다. 보드카는 주로 추운 나라에서 생산된것이 유명한 브랜드가 많다. 러시아의 스미노프나, 스웨덴의 앱솔루트, 폴란드 벨베디어, 핀란드의 핀란디아, 아이슬란드의 레이카 등등. 


그래서 보드카도 어울렸을 것 같지만 진으로 결정 된 이유는 특유의 '맛'이 한몫 했을 것이다.





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봄베이는 꽤나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다른 진에 비해서 봄베이는 알코올이 잘 정제되지 못한 러프한 인상도 있고 다양한 향들이 엄청 화려하게 자극적으로 올라온다. 투박하고 거칠고 강력하고 다채로운 이미지의 봄베이는, 분명히 클레멘타인의 히피적이고 자유분방하고 통통튀는 성격과 일맥 상통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무색무취가 특징인 보드카는 단단하고 차가운 이미지는 분명하지만 클레멘타인의 성격을 담기에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클레멘타인과 봄베이를 이렇게 스스로 연결해 본 이후로 나는 봄베이가 참 좋아졌다. 이전에는 마시기에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끼던 브랜드 이지만 이제는 바를 즐기는데 있어서 좋은 옵션중 하나로 정해놓았다. 


한국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봄베이 좋아하는 사람을 소위 '송충이'라고 부르며 진을 제대로 마실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걸 알고 있다. 가벼운 재미나 문화로 받아 들일수도 있지만 이게 과하면 눈치를 보게 되고 다른 진으로 갈아타게 되고, 결국 봄베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진을 마실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게 참 슬픈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가끔 좀 삐뚤어지고 싶을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땐 클레멘타인을 떠올리며 봄베이를 마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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