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솔 Nov 02. 2023

오! 나의 여왕님

샤르트뢰즈에 대하여

bar에는 매력적인 리큐르들이 많이 있다. 아마레토, 캄파리, 아페롤, 스즈, 압생트, 베네딕틴, 몬테네그로, 플란젤리코, 그랑마니에르, 치나, 아마로노니뇨 등등 많은 리큐르 들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샤르트뢰즈'앞에서는 다들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싶다.


허브계열의 리큐르로 130가지나 되는 많은 재료가 포함된 것을 자랑하듯 농염한 녹색빛이 굉장히 매력적이며, 그 맛은 55도의 높은 도수와 함께 다채로운 향신료나 약초의 향을 포함한 엄청난 폭팔력을 자랑한다.


처음 맛본 이들은 특유의 자극적이고 너무나도 광범위한 맛의 향연에 혀가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리큐르이지만, 꽤나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맛이 특징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리큐르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납득이 간다.


이 샤르트뢰즈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가톨릭 내에서 가장 엄격한 생활을 하기로 유명한데, 폐쇄적이고 은둔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내면의 '무언가'가 역으로 이 샤르트뢰즈를 통해 발산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폭발적인 맛을 자랑한다.




이 리큐르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알레르기라고는 겪어본 적이 없다. 그 어떤 해산물도 날것으로 잘 먹었고 남들이 음식을 가려먹는 행위를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나는 음식을 가려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샤르트뢰즈를 처음 먹었을 때, 내 몸에서 '넌 지금 위험한 걸 먹었다'라고 이상신호를 보내는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구역질이 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며, 심장이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뛰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먹고 처음 겪는 일이라 굉장히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전에 인상 깊게 마셔봤던 압생트와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이 이후로 나는 샤르트뢰즈를 '위험한 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경험 때문에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내 예상과 다르게 맛있게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130가지의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그중에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큐르 중 하나이며 샤르트뢰즈가 들어간 칵테일을 너무나 잘 즐기고 있다. 대신 첫 잔이나 중간에 마시기엔 아직도 좀 버겁고, bar에서 다른 술들을 실컷 즐긴 뒤에 마지막을 장식할 때 마시곤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데쓰프루프(2007)'에 이 리큐르가 재미있게 등장한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bar의 사장인 '워런'으로 등장하는데 워런은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손님들에게 한잔씩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바에는 규칙이 있다. 워런이 술을 주면 마셔야 한다. 손님들 모두가 정체 모를 이 술을 샷으로 다 함께 원샷을 하는데 반응이 참 재미있다.


"What the fuck is it??"


이 술을 처음 마시는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로 이렇다. 55도짜리의 저 독한 술을 샷으로 마신 탓도 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시면 특유의 찐한 풍미가 후각과 미각을 강렬하게 자극해 놀랄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의 온갖 단맛 쓴맛 똥맛 다 본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들처럼 샷으로 마셔도 재미있지만, 샤르트뢰즈의 진가는 칵테일의 재료로 사용될 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옛날 레시피를 살펴보면 위스키나 코냑등 짙은 브라운 스피릿의 칵테일과 풍미가 강한 버무스나 아마로가 사용되는 칵테일에 소량씩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칵테일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샤르트뢰즈 칵테일


1. 샤르트뢰즈 토닉 (Chartreuse Tonic)

샤르트뢰즈를 직관적으로 느끼고 싶지만 55도의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샤르트뢰즈토닉을 추천한다. 진토닉처럼 진 대신에 넣으면 되지만 진토닉의 진 비율보다는 약간 줄여도 좋다. 진토닉에 시트러스는 신중하게 선택하고 사용해야 하지만 사르트뢰즈토닉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길 권한다. 


허브의 사용은 옵션이다.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지만 처음 마셔보는 거라면 일단 안 넣고 마셔보길 권한다. 넣을 거라면 형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 민트류나 바질, 딜, 로즈마리, 세이지, 타임, 레몬밤, 깻잎, 참나물, 심지어 고수도 어울린다.



2. 티퍼래리 (Tipperary)

아일랜드의 지명을 딴 칵테일로 아이리쉬위스키 베이스에 스윗버무스와 샤르트뢰즈로 풍미를 더한 도수가 조금 높고 무게감 있는 칵테일이다.


맨해튼 칵테일의 변형으로 봐도 괜찮다. 샤르트뢰즈를 제외하고 베이스를 버번으로 바꾸면 맨해튼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맨해튼의 조합식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티퍼래리에도 도전해보자.



3. 샤르트뢰즈 스위즐 (Chartreuse swizzle)

샤르트뢰즈와 파인애플주스, 팔레넘을 이용한 칵테일이다. 팔레넘은 럼과 아몬드를 베이스로 라임에센스와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한 시럽의 일종이다. 파인애플주스와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것이 해변에서 마실법한 트로피컬 칵테일이나 티키(Tiki) 스타일의 칵테일 같은 느낌을 준다. 추천 칵테일 중 그나마 친근한 맛이 나고, 샤르트뢰즈의 강렬한 맛을 조금 눌러주어 입문하기에 좋은 칵테일이다.


핵심 재료인 팔레넘을 구비해 놓은 곳이 아주 귀하다. 공산품의 퍼포먼스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기에는 귀찮을뿐더러 Tiki스타일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면 재료관리가 까다롭다.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 칵테일은 아니지만, 바를 다녀보다가 이 메뉴를 발견하면 반드시 마셔보길 바란다.



4. 라스트워드 (Last word)

진 베이스에 룩사르도마라스키노와 샤르트뢰즈, 라임으로 만든 사워스타일의 칵테일이다. 진과 어우러지는 보태니컬한 맛과 향, 마라스키노리큐르와 어우러지는 달큰한 맛, 라임주스의 상큼함과 밸런스가 좋고, 중요한 건 이 녀석은 쉐이킹 칵테일이기 때문에 입에 닿을 때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풍미 있는 감촉이 앞서 언급한 다채로운 맛들 과 함께 상호작용 하면서 복잡하고 재미난 인상을 준다.


'Last word'라는 네이밍답게, bar에서 술을 얼큰하게 마시고 바텐더에게 마지막잔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이 칵테일이 나올 확률이 꽤 높다.




세계적으로 칵테일 문화가 발전하고 확장되면서 위스키를 포함한 다양한 술들의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현재 몇몇 위스키들이 품귀현상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샤르트뢰즈도 이를 피해 갈 수가 없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샤르트뢰즈 리큐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생산하는 수도원에서는 생산량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수도사들의 신앙생활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인 생산을 한다고 하는데, 아예 수입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 수입되는 몇 안 되는 보틀들을 두고 많은 bar들이 경쟁을 하게 될 것 같다.


bar에 가서 백바를 구경하다 보면 샤르트뢰즈는 꽤나 굉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리큐르이다. 그 매혹적인 녹색의 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견하게 된다면 '오늘은 운이 좋군..'이라고 생각하고 꼭 마셔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버려진 위스키 빈병에 남아있는 잔향 같은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