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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솔 Oct 29. 2023

버려진 위스키 빈병에 남아있는 잔향 같은 영화

<조제>, 2020

위스키가 영화에 등장할 때면 참 반갑지만 그렇다고 매번 그렇지는 않다. 특히 한국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에서 위스키든 와인이든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단은 맛이나 향, 마시는 방법, 때와 장소 등 그쪽 현지와 우리나라와의 정서의 차이가 있고, 위스키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감독이나 책임자의 어설프고 전문적이지 못한 견해나 해석이 들어가다 보면 이상하게 작품과 어울리지 못하고 붕 떠버리게 된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조제(2020)'가 그랬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 나는 꽤 놀랐다. 원작인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워낙 감명 깊게 보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뽑는 좋은 영화, 명작 영화인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어떤 성역에나 들어가 있을 법한 그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도대체 어떤 패기 넘치는 감독이 이걸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을까?'

'건너서는 안될 강을 건넌 게 아닐까?'


등의 걱정을 동반한 놀라운 감정이 먼저였고, 한편으로는 다시 이 영화를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쁜 마음도 있었다.


영화를 볼 때 어떠한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배우마저도. '조제'의 역할이 누구일지 정말 궁금했지만 꾹 참고 사전 정보를 최대한 차단하고 영화를 보았다.




너무나 유명하고 연기 잘하는 두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이 나름 영화를 잘 이끌어 간다. 원작의 일본스러움을 덜어내고 한국에 맞게 표현한 것들도 나름 괜찮았다. 원작과 비교되기보다는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지민의 캐스팅과 나이 설정은 좀 아쉬웠다. 나에게 한지민은 어렸을 때부터 20년은 넘게 봐왔던 베테랑 원로 배우이다. 조제 역할을 하기엔 경력과 나이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예 영화상에서 남주혁보다 연상인 30대로 설정되어 나온다.


원작의 두 배우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기대했는데 조금은 다른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진짜 아쉬운 점은 따로 있었다.



영화 내에서 조제가 위스키를 시향 하는 장면이 나온다. 꽤나 오글거리게 연출을 했더라. 향을 맡으며 눈은 감고 테이스팅 노트를 읊조리는 장면은 어떤 의미로는 참 명장면이었다. 


의도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 조제에게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나름대로의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능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서 설정이 된 것 같고, 현실은 집에만 박혀있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이나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조제가 향을 맡으며 모으는 병들은 전부 할머니가 버려진 것들은 주워온 것인데, 버려진 것에서 조차도 발현되는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즐기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장면들은 마치 부모에게 버려진 조제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위스키와 등장인물을 연결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접근방식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좋았던 만큼 그것을 영화에서 표현하고 연출하는 디테일이 정말 많이 아쉬웠다.


조금 더 나은 개연성을 주기 위해서는 위스키가 등장하기 위한 빌드업이 더 필요했다. 버려진 위스키에서 향을 맡으면서 스코틀랜드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설정이 조금 의아했고 후반에 나오는 스코틀랜드의 전경들이 쌩뚱맞게 느껴졌다. 



위스키 보틀의 선정도 아쉽다. '글렌리벳 파운더스 리저브 cs'가 나오는데 분명히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았겠지만 그 보틀이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감독만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게 전달이 되지 않다 보니 영화 장면에서 섞이지 못하고 붕 떠있고, 광고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글렌리벳의 파운더스 리저브가 국내에 런칭한 시기와 영화의 개봉시기를 비교해 보면 ppl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조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과 연결했으면 어땠을까? 


조제는 본인의 이름을 사강의 소설 속 등장인물에서 따왔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책을 구하러 나가기도 한다. 그 정도로 영화 속 조제가 좋아했던 사강은 생전에 술을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좋아하던 작가로 유명하다. 과도한 음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경우도 많았고, 본인의 마약 혐의에 대해서 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사강을 동경하게 된다면 술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사강은 위스키도 많이 즐겼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부분도 영화에 적용하여 조제가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좀 더 개연성 있게 나타내었다면 이처럼 뜬금없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먹고 버려진 비어있는 위스키병에 남아있는 잔향처럼, 이 영화는 원작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잔향 같은 영화이다. 버려진 빈병에서 희미하게 남은 잔향이라는 가치를 조명하여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었듯, 김종관 감독도 옛 명작 영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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