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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솔 Oct 27. 2023

낮은 곳부터 시작하는 사람들

완벽한 바텐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지트 겸 방앗간으로 삼고 있는 이곳은 그냥 동네에 평범한 작은 바 이다. 나는 여길 다닌 지 10년이 거의 다 되었다. 주인장과 직원들이 꽤나 술에 진심이고 접객도 마음에 든다. 이들에게 그동안 많이 배우기도 했고 신세도 많이 졌다. 


장점이 많은 곳이지만 특히 이곳이 마음에 드는 큰 이유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무심한 듯 챙겨주는 소위 '츤데레' 같은 접객 방식이다. 내향인인 나에게는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친절함이 넘치고 적극적인 접객을 하는 다른 업장은 조금 피곤하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일단 가볍게 인사를 해준다. 절대로 손님을 기다리던 하이에나들처럼 몰려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반사적으로 하는 인사도 아니다. 눈을 보고 낮은 톤으로 인사를 하면서 분명히 내가 들어온 것을 인지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사이다.


조용히 혼자 술을 즐기고 있으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나를 방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테이블에서 들어온 주문을 소화하면서, 또는 설거지를 하든 글라스를 핸들링하면서도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낀다. 나는 안전하게 방치되어 있음을 느낀다.


음료를 마시는 중간에는 맛이 괜찮은지 한 번은 물어봐준다. 내향적인 나에게 최소한의 개입인듯하다. 그렇다고 나도 조용히 입 닫고 술만 마시는 것도 아니다. 가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특별하게 공유하고 싶은 사건이 있으면 사장님이나 직원들과 소소하게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마땅히 바텐더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매장이 특별한 것은 내버려 둘 때와 말을 건넬 때를 판단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조용히 혼자 마시고 싶을 때는 어떻게 알아채는 건지 나를 내버려 둬 준다. 물론 나도 나에게 말 걸지 말아 달라는 신호를 무의식 중에 건네고 있을지 모른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던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던지, 대답을 단답으로 한다던지 등등. 그러면 귀신같이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해주고 다른 일을 하러 다른 곳으로 간다.

나에게 충분한 혼자만의 시간을 준다.



글라스가 비면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 눈치채고 스윽와서 다음 오더가 있는지 물어봐준다. 나는 불바디에를 마실지, 네그로니를 마실지 고민 중이었다고 말한다.



"괜찮은 버번위스키가 들어왔는데, 불바디에를 만들어봤더니 찰떡이더라고요. 드셔보실래요?"



라면서 나의 주문을 리드하며 도와준다. 난 이 가게를 정말 좋아한다.




이 가게를 다닌 지 10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사장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 이런 스타일의 접객에 관련해서도 물어보았다. 의도적으로 하는 것인지, 직원들에게 교육을 하는 것인지. 


역시나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항상 주시하되, 막상 손님이 들어올 때면 평소보다 살짝 낮은 스탠스로 인사를 하도록 시킨다고 한다. 대신,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멘트가 아닌 실제로 손님에게 상황에 맞는 말을 건네면서 인사를 하도록 한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한분이세요?", "일행이 있으신가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자리 이쪽 괜찮으신가요?", "이렇게 두 분 앉으시면 됩니다"



멘트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다르게 표현된다. 날이 추우면 추운지 물어봐주고, 비가 오면 수건이 필요한지 물어봐주고, 짐이 많으면 보관할 건지 물어봐주고, 안경에 습기가 차면 닦을걸 준다. 텐션이 좀 낮게 느껴지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맞는 접객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텐션을 좀 낮추고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울까봐..'라고 하는데,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마 문을 열고 들어온 처음부터 높은 텐션으로 대하는 것보다는 낮은 데서 시작하여 천천히 올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지 않나 싶다.


이곳에서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나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바텐더를 포함한 서비스업의 중요한 것들, 칵테일을 만드는 테크닉적인 것들, 시럽 만드는 법, 괜찮은 도구들 등등 참 신세를 많이 졌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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