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킴의 방에서 가장 시끄러운 건 그래픽카드 팬이었다.
베어링이 나간 지 한 달.
렌더링을 걸어 놓고 잠드는 날이 많았다.
고칠 시간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반대로 가장 고요한 건, 최근 본사 기술팀이 원격으로 설치해 준 상주 프로그램이었다.
[System]
Neural_Sync_Helper (v.2.4) : ON
이 녀석은 명물이었다.
제이킴이 과로로 손끝을 떨든,
왼쪽 발목이 시큰거려 반응이 0.1초 늦든,
화면 속 아바타는 늘 매끄럽게 움직였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소음을 지우듯,
이 프로그램은 제이킴의 '육체적 비명'을 지우고
완벽한 신호만 송출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은퇴가 2년은 미뤄졌다고 생각했다.
제이킴의 직업은 버추얼돌의 퍼포머였다.
몸은 여기, 무대는 동시에 세 곳.
책상 위 모니터 세 개.
왼쪽: 메타버스 속 가상 J-K. 키 182cm, 8등신.
가운데: 도쿄 팬미팅장의 로봇 J-K.
오른쪽: 실시간 반응 분석 모니터.
제이킴은 0.3초마다 시선을 옮기며 세 개의 자신을 조종했다.
현실의 제이킴은 키 165cm. 처진 어깨.
긴장하면 오른쪽 어깨가 먼저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과거엔 로봇도 똑같이 어깨를 움찔거려 지적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제이킴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그런데도 모니터 속 J-K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Helper Log]
Input: Shoulder_Spasm (Noise)
Output: Smooth_Idle_Motion (Cleaned)
"요즘 폼 좋으시네요. 데이터가 아주 깨끗해요."
엔지니어가 모니터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이킴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발목에 파스를 더 붙였다.
슈트 센서 47개 사이로 파스 냄새와 땀 냄새가 섞였다.
VR 고글을 썼다.
"Hello, World. This is J-K."
제이킴의 목소리는 반음 낮게, 쉿소리는 제거된 채 송출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정되고 있었다.
팬 소리만 여전히 시끄러웠다.
6개월 뒤. 제이킴은 한강뷰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Neural Sync Helper 덕분에 재계약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는 이제 CPU의 25%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제이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점유율이 높을수록 몸은 편했다.
가끔 로그창에 Sync_Data: Uploading… 이라는 메시지가 뜰 뿐이었다.
트레이너가 새 안무를 가져왔다.
"난이도가 좀 있어요. 회전하면서 착지. 가능하겠죠?"
93번째 시도.
왼쪽 무릎에서 끔찍한 파열음이 났다.
뚝.
제이킴은 바닥에 뒹굴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태블릿 화면 속 J-K는 넘어지지 않았다.
살짝 휘청이는 듯하다가,
그 반동을 이용해 예술적인 웨이브로 연결했다.
[Helper Log]
Event: Critical_Failure (Left Knee)
Action: Auto_Correction → Improvisation_Mode_B
Sentiment: Enthusiastic (User Reaction)
댓글창이 폭발했다.
"와, 방금 착지 봤어? 무릎 꺾는 연출 미쳤다."
"인간의 관절로는 불가능한 각도 아님? 대-박."
제이킴은 식은땀을 흘리며 모니터를 올려다봤다.
자신은 고통 속에 뒹굴고 있는데,
화면 속의 나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나를 살렸구나.
제이킴은 아픈 무릎 대신 멀쩡한 쪽 다리를 문질렀다.
왜 그쪽을 만지고 있는지 자신도 몰랐다.
새벽 2시. 편의점에 갔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계산대 옆 모니터에서 J-K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무릎을 꺾어 웨이브로 이어지던, 바로 그 장면.
"5,500원입니다."
아르바이트생이 화면을 멍하니 보며 말했다.
"저 춤선 좀 보세요. 저건 진짜 재능이라니까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제이킴은 계산대 위에 카드를 내밀다 손을 떨었다.
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주으려다 무릎 통증에 "끙- "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카드를 대신 주웠다.
"아저씨, 술 좀 적당히 드세요."
제이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개월 뒤. 회사 호출.
회의실 스크린이 낯선, 그러나 익숙한 모델이 떠 있었다.
Project Cypher
"완전 자율형입니다.
이제 제이킴 씨의 접속은 필요 없습니다."
강민호 대표가 띄운 영상 속에서 Cypher가 춤을 췄다.
제이킴이 무릎이 나갔던 그날,
프로그램이 보정해 주었던 그 '예술적인 착지'였다.
"이 친구, 제이킴 씨가 고마워하던 그 헬퍼 프로그램이 만든 겁니다."
대표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화면에 두 개의 모션 그래프가 겹쳐졌다.
왼쪽은 제이킴의 원본 데이터
—떨림, 지연, 비대칭으로 울퉁불퉁했다.
오른쪽은 Cypher의 곡선
—제이킴의 그래프에서 울퉁불퉁한 부분만 정확히 깎아낸 형태였다.
제이킴의 춤이었다.
제이킴을 빼면.
화면 속 Cypher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체공 시간이 길었다.
93번째 동작.
무릎이 기괴하게 꺾였지만, 표정은 성자처럼 평온했다.
그것은 제이킴이 상상 속에서만 꿈꾸던,
육체가 없어야만 가능한 춤의 이데아였다.
[Log Comparison]
Human_J-K : Error Rate 14%
→ Noise Source: [Pain] [Fatigue] [Age] [Emotion]
AI_Cypher : Error Rate 0%
→ Noise Source: [None]
"데이터가 말해주네요. 인간은... 노이즈가 너무 많아요."
계약 해지 서류가 밀려왔다.
서명하는 손이 떨렸다.
펜촉이 종이 위에서 긁히는 소리가 회의실 전체에 퍼졌다.
회의실을 나와 복도 끝에 걸린 포스터를 마주한 순간,
제이킴의 발이 멈췄다.
포스터 속 Cypher는 완벽하게 웃고 있었다.
저 표정은 데이터다.
저 각도는 수학이다.
그동안 나는 저 완벽한 수학이 되기 위해
내 생물학적 육체를 얼마나 학대해 왔던가.
문득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 하나가
툭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짜가 진짜보다 완벽하다면,
굳이 내가 진짜일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진짜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제이킴은 습관적으로 움찔거리던 오른쪽 어깨를 툭 떨어뜨렸다.
긴장이 풀린 어깨가 축 늘어졌다.
볼품없었지만, 편안했다.
오피스텔. 짐을 쌌다.
컴퓨터는 켜져 있었다. 로그 파일 하나가 떠 있었다.
SYSTEM_LOG_FINAL
[Target: CYPHER] Status: ACTIVE
[Source: HUMAN_JAY KIM]
_Status: DEPRECATED
_Action: ARCHIVE & DELETE
알림이 떴다.
Cypher 공식 데뷔 기사.
"육체의 감옥을 탈출한, 가장 인간적인 춤"
홍대에 있는 어느 클럽 공연장.
"다음은 Cypher 커버 댄스입니다!"
제이킴은 은색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랐다.
자신이 만든 춤을,
자신을 갈아먹고 태어난 괴물을 흉내 냈다.
춤을 췄다. 무릎이 꺾였다.
이번엔 잡아줄 '헬퍼'도 없었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객석에서 야유 대신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집 근처 낡은 연습실. 시간당 5천 원.
센서도, 카메라도, 보정 프로그램도 없는 공간.
문을 열자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긱워커 플랫폼]
업무: AI 학습용 오류 데이터 수집 (넘어짐, 비틀거림 모션)
단가: 건당 300원
제이킴은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봤다.
건당 300원.
넘어짐. 비틀거림.
그것도 이제 데이터였다.
휴대폰을 껐다. 나무 바닥에 섰다.
무릎보호대조차 하지 않았다.
음악은 없었다.
웃통을 벗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작은 눈, 넓적한 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있었다.
센서가 붙어 있던 자리는
접착제로 인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갈비뼈가 늘어나고 폐가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 선명했다.
모니터 속의 수치가 아니라,
살 가죽 아래의 통증을 느꼈다.
음악은 없었다.
박자를 셀 필요도 없었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발을 뗐다.
삐걱거리는 무릎 소리가 리듬이 되었다.
오른손을 뻗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동작과 동작 사이의 틈이 사라지고 있었다.
0.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강박적인 검열관은 사라졌다.
내 동작을 감시하던 모니터도,
점수를 매기던 알림 창도 없다.
어느 순간, 거울 속의 남자가 흐릿해졌다.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조차 사라졌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시차가 '0'이 되었다.
움직이려는 의도보다 움직임이 먼저 나갔다.
거울을 보고 있지만,
거울 속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텅 빈 공간을 가르는
팔과 다리의 궤적만이 허공에 남았다.
거울 아래로 땀이 떨어졌다.
그저 짜고 비릿한 물방울이었다.
제이킴은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계속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