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거울』
그 거울만 나를 기억했다
_ 나를 비추지 않는 거울들의 연대기
서른여섯의 출근 전 아침,
나는 세면대 앞에 선다. 화장실 천장의 LED 전구의 불빛은 충분히 밝았고, 그 밝음은 어둠을 몰아내기보다는 나를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빛처럼 느껴졌다. 거울은 지나치게 깨끗해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진다. 닦아낸 표면에는 얼룩 하나 없었고, 그 매끈한 투명함이 나의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공간 안에는 분명히 내 얼굴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쫓는 눈과, 그 자리를 미리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코,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은 있지만 굳게 지금은 다물고 있는 입이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제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얼굴은 늘 준비되어 있다.
흔들리는 건 얼굴이 아니라, 언제나 안쪽이었다.
어젯밤 야근이 남긴 피로가 눈 밑에 얇게 번져 있는 것도 보인다. 나는 그 쌓인 피로를 색으로 확인하는 데에는 익숙하다. 붉은 기운이 도는지, 푸르게 내려앉아 있는지, 피부의 결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그러나 그 피로가 내 안에서 어떤 무게로 쌓였는지, 그 무게가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을 짓누르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을 재킷과 블라우스 그리고 정장 바지의 옷깃으로 옮긴다.
블라우스 깃의 브랜드 로고가 중앙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지, 재킷의 칼주름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바지의 선이 어딘가에서 꺾여 있지는 않은지, 소매 끝은 재킷 밖으로 2, 3cm 단정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지, 내비친 부분에 작은 보풀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나는 그런 것들을 먼저 확인하고 정돈하는 데 바쁘다. 손끝으로 천을 쓸어내릴 때 스스르 하고 나는 소리는 짧고 건조하다. 그 소리가 날 때면, 내 안의 무언가가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조용한 안심을 느낀다.
그 안심은 감정의 평온이 아니라,
기능이 정상 작동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거울 속의 나는 늘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를 향해 있지도, 내 마음을 기다리는 얼굴도 아니다. 오늘을 살아내려는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얼굴도 아니다. 다만 멈추지 않기 위해 유지되어야 하는 조건을 갖춘 얼굴, 즉 하루를 준비한 단단한 얼굴인 것이다.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데에 충분히 잘 작동하는 얼굴. 누군가와 마주쳐도 불필요한 감정을 남기지 않는 얼굴. 오래 보다 보면 표정의 결이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반복해 온 미세한 근육의 배열. 그래서 거울 앞의 시간은 늘 짧다. 오래 보면 표면 아래의 미세한 마음의 균열이 올라올 것 같아서, 나는 내 사랑스러운 얼굴을 오래 처다 보지 못한다.
회사 로비의 유리를 지날 때면,
나는 유리 속 내 윤곽부터 찾는다. 유리 속의 나는 투명한 벽과 겹쳐 흔들리고, 사람들의 움직임과 함께 휙휙 지나간다. 어깨선과 허리선, 구두 앞코의 각도, 가방끈의 긴장감. 그런 요소들만 집중해서 먼저 바라보고 즉각적으로 바로잡는다. 얼굴은 언제나 뒤에 있다. 표정은 언제나 그 뒤에 위치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순간, 내 모습은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나는 그 반사 속에서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오늘도 문제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 말은 주문처럼 내 몸을 지탱한다. 문제없이라는 단어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덜어낸다.
회의실에서는 임원들과 팀장님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고개를 끄덕일 타이밍을 알고 있고, 침묵해야 하는 순간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말이 길어질 때 시선을 살짝 낮추는 방법, 예민한 공기가 흐를 때 표정을 무표정에 가깝게 정리하는 자세, 웃어야 할 때 웃되 ‘너무’ 웃지 않는 절제된 각도. 그런 것들을 모두 내 몸에 익히고 기억한다.
직장 동료들은 나를 멋진 커리어우먼이라고 말한다. 사진 속의 나는 늘 그런 모습으로 만인에게 인쇄되어 뿌려졌다. 눈은 또렷하고, 입꼬리는 과하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손볼 곳이 필요 없는 얼굴로...
그러나 보고서 제출을 위한 사진 촬영이 끝나면, 내 얼굴은 다시 마음의 방향으로 접힌다. 조직에 필요했던 태도와 표정을 대신하며 조금은 나를 느끼는 시간. 집에 돌아온 이후에는,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의 가면 쓴 얼굴의 결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의 하루가 반복될수록, 내 표정은 점점 기능에 가까워졌고, 내 본연의 마음의 얼굴은 그 모습을 잃어만 갔다.
어느 날,
취업 면접을 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 속의 내 얼굴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웃으려 해도 웃음이 바로 올라오지 않았고,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준비된 면접용 멘트와 문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문장은 정확했고 논리는 매끈했다. 그런데 입이 열리는 순간, 안쪽에서 미세한 떨림이 걸렸다. 말은 나왔지만, 마음의 따뜻한 체온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말은 점점 더 정제되었고, 감정은 말의 주변에서 과감히 밀려났다. 말이 끝나면 상대의 표정을 확인했다. 허락인지 아닌지. 그 표정이 고개를 끄덕이면 나는 안심하기 시작했다. 말은 도착했지만, 온도는 그 어디에도 남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거울은 내 입 주변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교실은 늘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웃음과 농담, 속삭임과 비웃음. 모든 소리가 같은 무게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중심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의 온도, 이름이 불릴 때의 공기, 미묘한 균열의 속도.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귀는 늘 긴장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말들은 고막 끝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괜찮아?”
같은 질문, 설명 없는 따뜻함. 그것들은 소음 속에서 스쳤다. 하지만 난 붙잡지 않았다. 그 말들을, 그 마음들까지 붙잡을 여유가 없었다. 모든 감정을 붙잡으면 멈춰버릴 것 같았다. 멈추면 곧바로 뒤로 밀려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시절의 거울 앞에서 나는 얼굴만 확인했다.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믿었다. 내 귀는 충분히 잘 쓰이고 있다고. 그러나 그 귀는 나를 향한 따뜻한 소리를 담아내기엔 이미 너무 분주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강의실과 도서관, 과제와 아르바이트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계산하고 분배해야 했다. 다음 수업, 다음 버스, 다음 일정. 캠퍼스에는 비 온 뒤의 잔디 냄새와 커피 향, 오래된 종이 냄새가 떠다녔다.
그러나 나는 그 향들을 향유할 여유가 없었다. 바쁜 발걸음은 멈추지 못했고, 내 들숨과 날숨은 이동을 위한 만큼만 허락되었다. 짧은 들숨과 날숨. 공기는 배경이 되었고, 향은 스쳐 지나갔다. 그 시절의 거울 앞에서 나는 얼굴을 확인했지만, 코를 그 모든 향기들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
그러다 어느 날,
오래된 집을 정리하다 서랍 맨 아래에서 작은 손거울을 발견했다. 천으로 감싸진 손바닥만 한 거울. 모서리는 닳아 있고, 은박은 흐릿했다. 표면에는 미세한 스크래치가 시간의 흔적처럼 겹쳐 있었다. 손에 쥐자 차가움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그대로 몸과 마음이 정지되었다.
그 작은 거울은 내가 놓친 모든 시간들을 조용히 열어젖혔다.
초등학교 5학년의 아침.
엄마가 내 머리를 사랑스럽게 빗겨주던 순간. 빗살이 두피를 스칠 때마다 엄마의 숨이 내 머리카락 위에 얇게 내려앉았다. 그 숨은 조급하지 않았고, 끊기지 않았고, 언제나 내 고개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이어졌다.
방 안에는 비누 냄새와 따뜻한 공기가 섞여 있었다. 햇빛은 머리카락 위에서 부드럽게 반짝였다. 그때 거울 속의 나는 목적도 평가도 없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거울을 내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여기 봐.”
그 말은 통제가 아니었다. 함께 보자는 말이었다.
“우리 딸 너무 예쁘지.”
“우리 같이 볼까.”
그 마음이 작은 손거울에 남아 있었다.
나는 손거울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너무 오래 보지 못한 내 얼굴이 있다. 시선은 한 곳에 머물러 있고, 입에는 이유 없는 미소가 걸려 있다. 잊고 있던 보조개가 다시 얼굴을 내민다. 숨은 천천히 깊어지고, 공기 향기를 품고 내 안으로 또렷하게 드나든다.
모든 감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
설명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저 거기에 있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놓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얼굴의 윤곽만 확인해 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사회의 거울들은 나를 반사했지만, 기억해주지는 않았다. 유리와 금속과 조명은 내 표면을 비추었을 뿐, 내 마음의 숨결까지 붙잡지는 못했다.
손거울 위로 저녁빛이 닿는다.
스크래치를 따라 얇게 반짝인다. 나는 울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설명할 수 없는 울음이다.
내가 나를 오래 놓고 살았다는 사실이,
이제야 조용히 풀려 나온다.
오늘 아침,
나는 출근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손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웃어본다.
완벽하지 않다.
약간 떨린다.
그 떨림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금속 문에 짧게 비친 내 눈을 붙잡는다.
고작 1초.
그런데 그 1초는 길다.
그 1초 동안,
내 눈은 보여지는 눈이 아니라
나를 보는 눈이 된다.
나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신다.
오늘은 숨이 조금 얇다.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다.
그 속에 향기도 온기도 들어 있다.
거울은 늘 반사한다.
그러나 내가 나를 나로 기억해 내는 순간,
비로소 비춘다.
그 안에서
그 떨림으로...
나는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