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2

중간장. 과거. 거짓된 일상

중간장

과거

거짓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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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너무 잘 지내지! 나 요즘 너무 행복해. 대학교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성적도 잘 받고. 물론 해외라서 엄마 김치찌개가 그립기는 한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재미는 있어. 알겠어. 밥 잘 챙겨 먹을 테니까, 엄마도 걱정하지 마. 알겠다고~ 힘든 거 있으면 다 말할게.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나도 사랑해.”

뚝. 전화를 끊는다. 오늘도 나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마일드세븐 팩으로 2갑 주세요.”

“네, 구천 원입니다.”


나는 지금 해외가 아니다. 대학교 친구들이랑 잘 지내기는커녕 편의점에서 일하느라 하루하루를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다. 단지 아까의 전화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다.


내가 열여섯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은 가세가 기울었다. 집은 40평대에서 20평대, 20평대에서 10평대, 2년이 지날 때마다 집 크기는 반으로 줄어갔다. 원래라면 대학도 가지 못했을 형편인데, 엄마가 대학은 꼭 가야 한다며 내게 500만 원을 주고서 서울로 올려보냈다. 하지만 엄마는 모른다. 요즘 세월에 500만 원으로 어떻게 서울에서 살아가는가. 엄마는 어릴 때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미싱 돌리는 일이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엄마에게 대학은 높으신 분들이 일하는 귀한 곳으로 칭송받는다. 엄만 하나도 모른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엄마한테는 햇볕이 잘 드는 좋은 집에 방을 구해 대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학비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싸게 싸게 대학 다닌다고 거짓말했다. 물론 좋은 집에 방을 구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방에 바퀴벌레가 안 나오면 다행인 반지하였다. 더군다나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겨우 들어온 대학이 내게 전액 장학금을 줄 리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다. 언제나 우리 엄마는 내가 집안을 다시 일으킬 거라며 희망찬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건 내게 다소 부담이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실망을 끼칠 수도 없었기에, 나는 거짓말을 했다.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다짐하면서, 첫 거짓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불렀고, 눈덩이가 비탈길에서 구르듯 그 크기는 점점 더 커졌다. 스스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되새기며 머리를 쥐어 잡았다. 전액 장학금으로 시작한 내 거짓말은 이제 해외 유학까지 커버렸다. 엄마한테 성적이 잘 나와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고 했더니, 어디서 들었는지 그 정도 성적이면 해외유학은 갈 수 있지 않겠냐고, 꼭 가라고 말하더라. 남편―나한테는 아빠―이 해 외유학을 갔다가 얻은 인맥으로 반짝 성공했던 시절을 떠올려서일까, 유독 해외 유학에 집착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해외로 유학갔다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엄마가 한 번도 서울에 상경한 자식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몇 번 찾아오겠다며 집 주소를 묻고는 했다. 그때마다 학교 행사가 있어서 집에 안 들어간다, 친구가 가출을 해서 잠깐 재워주고 있다는 둥 아슬아슬하게 피했었다. 한동안은 계속 자식 집에 집착하셨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내 거절에 지치셨는지 이제는 다행히 찾아오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가끔 나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왜 거짓말을 시작했는지, 엄마의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나를 절망으로 빠트리지는 않았는지, 만약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오히려 더 큰 절망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닌지, 밤만 되면 침대에 누워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밤은 스스로 추궁하는 진실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거짓임을 밝힐 수는 없었다. 거짓말은 이제 너무 거대해져서 나마저도 완전히 가려버렸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 대학에 가 장학금 받고 해외 유학을 간 엘리트가 되어버렸고, 진짜 ‘나’는 그저 편의점과 고깃집에서 일주일에 몇십 시간씩 돈을 버는 불우이웃이니까. 진짜 나와는 서서히 멀어짐을 느낀다. 그러나 멀어진 나를 붙잡을 수는 없다. 그게 엄마가 바라는 ‘나’는 아닐 테니까. 오늘도 나는 거짓된 대본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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