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짧았고, 2월 말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며, 3월엔 라섹수술을 했다. 이렇게 주절주절 변명부터 늘어놓는 이유는 - 만든 게 많지 않아서. 그리고 이미 4월이라서. 그래서 만들수리 기록을 2,3월을 묶어본다. 1월에는 어떤 이유로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만들기도 많이 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의 이 정도의 속도와 양이 나에게 맞는 수준일 거다.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그 수준.
2월엔 설 연휴가 있어서 재봉 수업에는 한 번인가밖에 못 갔다. 이 치마는 작년에 한 번 만들어봤던 패턴인데, 만들고 보니 사이즈가 나한테 딱 맞기도 하고, 쌤이 남는 천이라며 1마 남짓한 치마용 천과 속치마용 천을 주셔서 다시 만들게 되었다. 속치마용 패턴은 책에 없던 거라 허릿단 안쪽의 천에 이어 붙이기 위해서 속치마용 수치를 계산해서 잘라야 했다. 잘 계산한 것 같았는데 허릿단에 맞춰 재봉을 하려다가 한번 대혼란이 와서 속치마는 포기해야겠다 싶었었다. 수업에서는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느 쉬던 날 아주 천천히 원래 만들었던 치마와 비교해가며 사이즈를 맞춰봤더니 크게 틀리지는 않아서 겨우 속치마까지 넣어서 완성할 수 있었다. 지난번 치마와 길이를 다르게 하기 위해 5센티 정도 더 짧게 했는데도 입어보니 길이는 거의 똑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
이것은 원래 화분 커버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 노르웨이의 숲에서 사시는 분이 헤어밴드를 만들어서 한 걸 보고 너무 예쁘길래 겨울이 가기 전에 헤어밴드를 한 번 만들어 보자 하였다. 뜨개동에서 패턴을 결제하고 영문 패턴을 처음은 걸러 띄고 본문부터 읽어 내려가면서 뜨개를 시작하였다. 보통 대바늘 원형 뜨기는 뜨고 나면 엄청 늘어나기 때문에 처음 코를 잡았을 때 너무 작아 보였지만,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때 풀어서 다시 시작했어야 하는데,, 고무 뜨기를 5단 정도 하고 났더니 이건 어린이 머리에도 들어가지 않을 사이즈다. 1돌이 안 된 아기가 있는 친구에게 선물로 줄까 싶어서 조금 더 떠보았는데, 무늬가 들어가면서 머리에 딱 맞아야 할 위치에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작다. 무늬를 모두 뜨고 나서는 결정했다. 이건 사람에게는 무리다. (도안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니 내가 선택한 코수는 어린이용 사이즈였고, 바늘도 실도 원래 도안보다 작았다.)
그래서 갑자기 눈 앞에 보이는 화분에 뜨다 만 편물을 대어보았다. 밑동 사이즈에 얼추 맞아 보인다. 그리하여 갑자기 노선을 변경하여 화분 커버로 진행한다. 작년에 식물 작업을 하던 작업실 친구한테 샀던 소포라 화분이 예뻐서 이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로 만들기로 한다. 눈대중으로 코수를 늘리고, 고무 뜨기를 시작해서 화분 크기에 맞췄다. 다 뜨고 실을 정리 하기 전에 화분에 입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것이 이 소포라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날 이후 소포라는 급격히 시들시들 파들파들 말라가더니 곧 유명을 달리했다.
토분은 숨을 쉬어야 한다는데 옷을 입혔다 벗겼다 자꾸 괴롭혀서 그랬나, 이미 말라가는 조짐이 보이던 때였는데, 물만 주고 통풍은 신경 쓰지 않아서 인가, 겨울까지는 새잎도 내고 생생했던 소포라가 죽어버리자 이 화분에 대한 애정도 조금 줄어들어버렸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 운명을 받아들이고 비운 화분에는 이제 산세베리아가 심겼다.
2월 말부터 3월 초는 그야말로 마스크 대란이었다. 코로나보다 사람들은 마스크에만 집중했다. 하루 종일 마스크에 대해서만 떠드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피곤함만 몰려왔다. 코로나 이슈가 터지고 나서도 따로 일회용 마스크를 적극적으로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놓았던 일회용 마스크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고, 사람들이 마스크 구하기에 눈을 빨갛게 하고 달려드는 것을 보니 오히려 뒷걸음치게 되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마침 봉봉비 쌤이 마스크 DIY 키트 하나를 주셨다. 이거 그대로 패턴 본 떠놓으면 여러 개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한창 마스크 대란 중일 때는 마스크 필터 천을 파는 모든 온라인 구매처는 입고가 되자마자 솔드아웃이 되었다. 마스크 끈 마저 구하기 어려웠다. 첫 번째 마스크는 쌤이 주신 거즈천을 안에 대고 만들었고, 두 번째 마스크는 유기농 다이마루를 대고 만들었다. 마침 재택근무를 시작해서 마스크를 끼고 멀리 나갈 일이 없어 천 마스크만으로도 지내는 게 가능했다. 두 번째 만들 때는 아예 같은 천으로 여러 개 만들어서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고양이는 옷 입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앙꼬 옷을 많이 만들어보지 않았다. 한 번 뜨개로 옷을 만들어 입혀봤지만 그건 친구네 강아지 줄 옷을 사이즈 확인차 입혀본 거라 사실은 한 번도 앙꼬의 옷을 만들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그때도 앙꼬는 옷을 입자마자 굳어버린 채로 뒷걸음질만 쳤다. 예전에 하네스도 채워봤었는데 그걸 차고 밖으로 달아나버리고는, 하네스를 어딘가에 벗어버리고 온 기억이 있어 옷 만들 생각을 더 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고양이가 주인이 손수 만들어 입힌 옷을 예쁘게 입은 것을 보니, 재봉 배우는 사람으로서 나도 한 벌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게 되었다. 나름 사이즈를 재서 M사이즈로 만들어서 입혔는데, 그 사이에 앙꼬가 살이 쪘는지 아니면 앙꼬 몸이 표준 사이즈가 아니라서 그런지 팔이 꽉 끼고 배가 꽉 낀다. 입혀놓았더니 걷기는 하지만 얼음 상태가 되어 로봇처럼 걷는다. 앙꼬는 암홀이 더 깊고 배 부분이 더 넉넉한 옷을 만들어 줘야 하는구나, 깨달음을 얻고 옷을 접어 넣어버렸다. 주위의 몸집이 더 작은 고양이에게 입혀봐야겠다.
작업실 친구가 선물해 준 앙꼬 인식표가 꼬질꼬질 해져 버린 지 오래. 바꿔줘야지 생각하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가죽 인식표가 아닌 이상 내가 만들어주는 게 더 낫겠다는 결론에 이른 지도 오래. 집에 많이 남아있는 패브릭 얀을 길이 조절 매듭으로 마무리만 해주면 될 것 같은데, 마음만 먹고 시작하기 참 오래 걸린다. 유튜브를 보면서 길이 조절 매듭을 배우고, 옷 만들고 남은 모직 천을 동그랗게 잘라 앙꼬 이름을 자수로 놓고 완성! 예전에 만들어 준 똑딱이를 단 뜨개 목걸이는 가지고 나가자마자 어디 버리고 왔길래, 이번에도 금방 잃어버리고 오겠지 하고 마음을 비우고 채워줬다. 내가 만드는 건 늘 어딘가 허술한 것만 같아서, 금방 망가질 것만 같은 두려움. 다행히 나름 견고해서인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잘 차고 다닌다. 발로 목 주위를 퍽퍽 퍽퍽 긁을 때마다 앙꼬 이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는 게 좋다.
한 번 만들었던 패턴을 여러 번 쓰는 일은 많이 없다. 같은 패턴이더라도 다른 천을 사용하면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옷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매번 새로운 패턴을 해보고 싶어 지니깐. 그럼에도 같은 패턴을 몇 번 더 사용하는 일이 있는데, 그때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선물을 해야 하는 데 완전히 처음 보는 패턴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한 번 만들어봤던 패턴을 쓰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도도 빠르다.) 이 보트넥 블라우스는 내가 처음 만들어 입어보고 마음에 들어 사이즈를 하나 더 키워서 작년 친구 생일에 선물했었다. 선물 받은 친구도, 그걸 본 다른 친구도 마음에 들어하길래, 이 친구들 무리에게 이 디자인의 옷을 모두 선물하자! 했었더랬다. 다른 두 친구의 생일이 한 달 차이라서 이번에는 두 개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같은 디자인으로 하나는 원피스로, 하나는 블라우스로. 같은 디자인의 옷을 두 벌 만들면 각각 하나씩 만들 때보다는 효율이 생기는 것 같다. 소매 만들 때 한꺼번에 두 번 소매 만들고(팔은 두 개니까 결국 네 개), 옆 선 박을 때 두 번 박고, 오바로크도 한꺼번에 달달달달달.
한 친구는 홍콩에 있어서, 그리고 갑작스러운 코로나 때문에 언제 한국에 올 지 몰라 전달일이 미정이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사이즈도 맞고, 딸과 커플룩 할 만한 옷도 있어 마음에 든다며 착샷을 보내왔다.
동생네는 올해 아기를 가졌다. 집안의 첫 경사이고, 아기가 태어나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올케를 위한 임부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가진 패턴 북을 보다 보면 왜인지 다 임부복 같은 느낌의 원피스가 한가득이다. 조각이 많지 않고, 직선 위주의 원피스이다 보니 임신부도 입기 편한 옷들인 것이다. 천을 고를 때부터 고민이 꽤 되었는데, 원래 꽃무늬 패턴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꽃무늬는 자기 취향이 아니면 영 손이 안 가게 되기 때문이다. 만들어서 입기 시작할 때의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그때의 배 크기도 고려해야 하다 보니 내 옷을 만들 때처럼 탁탁 골라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얇으면서 모두에게 무난한 체크무늬 천을 찾을 수 있었다. 봉봉비 쌤께 임부복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다른 부분보다 배 쪽의 주름을 평소보다 1.5배 정도 늘리는 게 좋다고 하셨다. 주름이 풍성하면 배가 나와도 치마가 많이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 기존에 2 마면 원피스 하나를 만들 수 있어서 2마만 샀는데, 패턴을 대어보니 2마로는 모자라다. 배색 천으로 몸통 부분을 재단하고 소매와 치마를 달아보니, 한 가지 천으로 했을 때보다 오히려 느낌이 더 괜찮아졌다. 풍성한 주름의 치마를 몸통과 연결하고 신나게 오바로크를 하다가 몸통 부분 천이 찝혀 찢어져 버린 일은.... 눈물눈물. 원래 디자인에는 없던 주머니를 급하게 만들어 달았다. 앞으로는 오바로크를 조심합시다.
시누이는 이 옷을 입어보더니 “‘나는 임산부다’ 옷이네요.”라고 한줄평 하였다. 배가 좀 더 많이 나오고, 날씨가 더워질 때쯤 이 옷을 입으면 ‘나는 임산부다’ 옷의 진수를 알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 번 쓰고 남겨둔 비닐을 재사용하여 포장도 해보았다.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닐을 한 번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깨끗한 비닐은 한 번씩은 더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쓰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봉투에 넣을까 하다가 쌓아놓은 비닐이 보여 옷을 잘 개어 넣었더니 진짜 파는 제품 같은 느낌도 들고 왠지 더 뿌듯하다. 옷을 좀 더 예쁘게 잘 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