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후유증으로부터 도망가는 중입니다
도전이나 시도 끝에 남는 것은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 아무리 계산기 두드려봐야 마음 못 이긴다. 마음은 단순하다.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하면 슬프다. 그리고 나는 자주 슬프다. 다만 이력을 남기지 못한 슬픔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은 있다.
먼저, 실패가 자괴감을 줄 때. 우리는 타인의 성공을 보고 희망을 느낀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도전한다. 그러다 실패하면 나만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진다. 비로소 자괴감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따지고 보면 성공은 원래 힘든 일. 성공한 사람만 주목받는 세상이라 수많은 실패자를 보지 못했을 뿐, 실패는 매우 평범한 일이다.
평범함에 속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아무나 못한다. 더군다나 당장 나를 평균 이상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실패 앞에서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나에게 관대해져야 내일을 계획할 수 있으니까.
다음으로 의욕 저하. 연이은 실패는 의욕을 빼앗아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광고 카피가 안온하게 들리기 시작했다면 도전에 신물이 난 상태일 것이다. 기꺼이 안주하겠다는 다짐이 서면 쉬는 것도 방법이다. 밥벌이 때문에 쉴 수 없다면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넘어진 사람도 먼저 손 내밀 수 있다. 주변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해도 된다. 가장 좋은 위로는 이어달리기다. 내가 받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면 된다. 다만 상대의 처지를 고려해 도움받아야 한다. 각자 입장이 있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쉬고 나면 돈이든 마음이든 빚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다시 도전할 의지가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허무함. 긴 시간 공들인 도전에 실패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몇 달, 몇 년을 준비하고 시도한 노력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시간’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가장 많이 겪은 후유증이 바로 이 허무함이다. 극복하는 방법은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다. 일상은 일과 생활로 구성되어 있다. 일에서 힘들다면 생활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평소 생활을 잘 가꾸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생활을 엉망으로 방치한 탓에 빌려 쓸 힘이 없던 거였다. 정말 돌아갈 곳이 없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보다 생활에 무게를 두고 살았다. 조금 늦었지만 잘 먹고, 잘 쉬고, 가족이나 친구와 잘 지내려고 애썼다. 환경을 바꾸고 취미를 찾았다. 긴 시간 필요했고 쉽지는 않았지만 일에서 필요한 힘을 빌려 쓸 만큼 생활을 가꾸자,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지 않는다.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매일 주문처럼 되뇐다. 어차피 노력은 성공의 기준이 아니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노력하되, 나의 생활을 방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루를 일이나 목표만으로 채우는 짓은 더는 하지 않는다. 작은 일들,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내게 필요한 일들. 일테면 가족과 13,500원 무한리필 갈빗집 가기, 오후의 산책, 마블 영화 보기 같은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따금 실패가 두려울 땐 그냥 조금 더 한다. 한두 시간 더 하고, 잠 좀 덜 자고. 다음날에는 그만큼 또 쉬고. 이제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난주에는 기대하던 공모전에서 탈락했고, 문예지에 투고한 것은 “저희 문예지와 맞지 않아…”라는 정중한 거절로 끝맺었다. 마음 아팠고 아쉬웠고 어딘가 억울했지만, 산책할 시간이 되었고 날씨가 좋아 길을 걸었다. 며칠 전에는 극장에서 본 영화가 VOD로 나왔다기에 TV로 보려고 본가에 갔다. 예전 같으면 탈락 소식에 멈췄을 나의 하루가 이제는 늦은 밤까지 계속된다.
누구나 성과를 기대하며 살지만 실패가 더 많은 세상이다.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통해 ‘퇴고’를 ‘토고(토가 나올 때까지 고쳐 쓰는 것)’라고 표현한 바 있는 소설가 김연수는 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글의 열 배 이상의 글을 지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령 300쪽짜리 소설을 쓴다면, 3000쪽 이상의 분량이 지워진다는 소리겠다. 하나의 문장을 위해 수많은 원고를 지운다는 것이 하나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실패를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나는 아직 성공할 만큼 실패를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주 도망가는 처지이긴 하지만, 열심히 하지 말자는 소리가 나는 달갑지 않다. “어차피 피땀눈물 쏟아가며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대로는 안 될 테니, 적당히 하자”란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공감보다는 서글픔이 앞선다. 사는 게 버겁고 세상은 불공평하니 “대충하자”는 목소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좌절할 때마다 유혹으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나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것을 선호한다. 무리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적어도 저번 주와 그제와 어제와 오늘은 그렇게 살았다.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노오력’과 ‘열정페이’ 같은 말을 몸으로 느끼며 산 지 오래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하고 싶다. 일도 그렇고 생활도 마찬가지. 죽을 것 같은 일 앞에서 도망가며 살아도 하루하루 느껴지는 성실한 뿌듯함 안에서는 오래 머무르고 싶다. 그것이 나를 만족스럽게 만들고 그것만은 성공도 실패도 빼앗지 못하는 내 이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