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할 땐 출구를 열어두는 것이 좋다

도태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는 중입니다

by 이학민

누구나 밀려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탈락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사회다. 김영민 교수의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보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 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라고 나온다. 경쟁은 이미 벌어졌고 누군가는 도태될 것이며 도태된 자가 할 일은 긴 시간 고통받는 것이 정해진 사회라는 의미다.


우리는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한 나라에 산다. 분배는 성장 이전에 합의해야 한다. 가진 것의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합의가 힘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못 사는 나라보다 가진 것의 차이가 큰 나라가 과연 더 행복한가. 알 수 없다. 경쟁할 뿐이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변화를 원하고, 이미 더 가진 자는 대대손손 가진 것을 지키며 더 가지려고 한다. 이는 말도 안 되는 교육열의 원인이 된다.


대학에서도 스펙, 직장에서도 자기 계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습의 나라. 기회는 한정적인데, 모든 기회가 높은 수준의 배움을 요구한다. 그 결과 사회적 기능보다 자격을 위한 시험에 능숙한 세대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배운 것을 활용할 기회는 드물다.


자원 없는 나라는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른이 될 때까지 목표를 좇는 것만 배우고 다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경쟁에서만 밀려나도 사회인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무너지기 쉬운 시스템이다. 오염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지위, 승진, 경쟁 승리는 ‘기다리면 무료’처럼 견딘다고 얻는 게 아니다. 경쟁 사회에서 위로 향하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나머지는 위로의 대상이 된다. 이때 가장 좋은 위로는 다른 선택지를 손에 쥐여주는 것이지만, 누구도 나의 미래를 설계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니 도태 불안이 찾아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걱정이 아니라 준비다. 도태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는 나만의 방법은 ‘다른 가능성 열어두기’다. 이는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고 믿고, 나를 탐구해 선택지를 늘린 후 마음과 시간과 집중력을 적절히 분배해 사는 것을 말한다.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구태여 못하거나 싫은 일까지 억지로 끌어안으려고 하면 그 자체가 탈이다. 삶의 만족도는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할 때가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최소화할 때 높아진다. 하기 싫거나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혹은 합의 가능한 선택지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나를 탐구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나는 뭘 잘하지?”, “뭘 좋아하지?” 이것만 따져서는 곤란하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햇빛 잘 드는 곳을 찾아봐야 거기서 거기. 지도 자체를 넓어야 한다. 지도를 넓히는 방법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부정적인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구체적으로’에 찍는다. 도태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은 지도를 넓히는 상상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정보를 모으고 상상하면 된다. 상상 속 상황과 대사는 경험자가 주는 정보가 기반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미 하는 사람이 있다. 용기 있는 자가 정보를 얻는다. 또한 인터넷은 사용자에 따라 도서관이나 선생님으로 변한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일이 될 때도 있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혹은 권태를 미루기 위해 방법을 바꿔가며 색다르게 시도할 때가 그렇다. 색다른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미래에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폐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 라벨을 붙여두더라도 어딘가 보관해두면 그 방식이 유용한 일을 만났을 때 꺼내 쓸 수 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 따윈 없지만, 한 가지 목적에 실패한 방법이 다른 목적 앞에서도 실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실패한 방법을 다른 목적에 적용해 성공하는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고 부른다. 프로에게는 실패도 무기다.


도태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우려다. 방비는 중요하지만, 방비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하면 오히려 도태를 앞당긴다. 일하며 미래 일이 될 수 있는 것을 탐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분배다. 시간과 에너지는 물론, 마음도 그렇다. 마음은 한쪽에 몰아 쓰면 집착이 된다. 더 잘하려고, 눈에 띄려고 애쓰면 강박이 생기고 매 순간 긴장한다. 스스로 실수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는 기초적인 방법은 ‘출구 열어 두기’다. 평소처럼 방 안에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잠그면 불안해진다.


집단이나 시스템에 적응하고 나면, 내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내가 선 곳이 내가 될 수는 없다. 평생직장은 옛말이고, 일이 나를 책임져 주는 일은 없다. 다른 일 하면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지만, 다른 일하는 내가 될 뿐이다. 언제든 다른 일하는 내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출구를 열어두는 마음은 그 자체로 안정감을 준다.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니까. 불안은 순간의 감정이고, 안심하면 물러난다. 안심 또한 순간의 감정이다. 실제 다양한 선택지를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 순간의 안심을 주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주변에 있다. 눈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도태 불안은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더 잔인하다. 평소 시야를 넓게 보는 것이 도태 불안이 주는 억울함을 더는 방법이다. 나는 요즘 1인 출판사를 자주 상상한다. 스스로 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저자를 섭외해 기획, 편집, 브랜딩, 마케팅 등을 내가 맡아보고 싶다.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성의 있게 들여다봐도 전혀 다른 세계임을 알 수 있다. 당장 도전 및 시도 가능성은 적지만, 1인 출판사의 목소리와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염탐하듯 찾아보는 중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의 지도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쩐지 세금공제 이야기가 시선을 오래 잡아끈다. 돈도 없는데 소비 걱정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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