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구독자 모집 마감을 앞두고

by 이학민

안녕하세요. 문장보부상입니다. 글을 써서 파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진종일 글을 썼고요. 지금부터는 팔아보려고 합니다. 마땅히 팔 곳이 없어 고민하다가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이곳에 프로모션 연재를 올리고 있지만요. 문득 제가 글을 파는 방법이 또 다른 글쓰기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정말 이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봅니다.


저에게 문장을 파는 일은 회사원이 회사에 나가는 일과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밥벌이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의미겠습니다. 글만 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회사 일이 재밌어도 싫은 점 하나는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이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좋은 점이 한 갠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제 마음과 같습니다. 찡긋)


오늘 팔기 위해 가져온 글은 이 글 한 편이 아니라 정기 발행물입니다. 제가 혼자 기획하고 발행하는 <일단연재>라는 발행물인데요. 지금은 유료 구독자 모집 기간입니다. 구독자를 모집하게 된 것은 글을 팔 경로가 없어서였습니다. 청탁이 많이 들어오고 공모도 성과가 나오면 이렇게 손과 마음이 많이 가는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조금 합니다. 자유도가 워낙 높으니까요. 브런치도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보는 사람은 없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독립발행은 반드시, 정해진 특정 독자가 있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니 매력적입니다. 아마 이래서 독재를 하나 봅니다.


지면이 없어서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광고 지면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알려야 사람들이 볼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순서가 뒤바뀐 겁니다. 이미 저를 아시는 분이 많을 때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외치면 많은 분이 알게 되겠죠. 하지만 저를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저도 저를 가끔 잊을 정도니까요.


구독자를 모집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3월 시작한 <일단연재>가 2호 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잠시 소개해드리자면(자연스러웠나요?) <일단연재>는 유료 구독자분들께만 한 달간 스무 편의 원고를 발행합니다.


콘텐츠는 에세이와 소설입니다. 단편 혹은 경장편 소설 두 편과 과장되고 코믹한 재미를 담은 가족시트콤(형태의 소설) 한 편. 그리고 기획 산문 두 편(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하는 산문과 일에 관해 고민한 문장을 전하는 산문)을 준비했습니다. 열심히 차린다고 차려보았는데요. 입맛에 맞으실지도 걱정이지만, 드실 분보다 차린 음식이 많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큽니다. 아직 구독자 모집 기간이 이틀이나 남았으니 엄살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업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원고를 기획하고 쓰는 일이 쉽다는 건 아닙니다만 익숙함과 기꺼움에서 차이 납니다. 원고 쓰는 일은 너무 익숙하고, 기껍지 않은 순간이 잘 없습니다. 그런데 영업은 다릅니다. 익숙하지도 기껍지도 않은 순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쑥스럽고 구독을 제의하는 게 괜히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만원이 이렇게 큰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처음 구독료를 정할 적에는 쉽게 생각했습니다. 만 원쯤이야. 하는 생각은 아니었고, 이미 단독 발행하는 창작자분들이 주로 만 원으로 정하셨길래 저도 따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스무 개의 산문과 만 원을 교환하는 일이니까 편 당 오백 원이라는 소린데, 내가 과연 오백 원짜리 원고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여전한 숙제입니다.


출판사 간행물이나 업체를 통해 원고를 작성하게 되면 고료를 받습니다. 가장 적은 돈으로 받아본 게 편당 삼만 원이었습니다. 분량은 천 자 내외였고요. 그런 것에 비하면 오백 원짜리 원고는 오분 만에 써야 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구독자) 입장에서 보면 만 원에 일, 이천 원만 더 보태면 기성작가들의 명작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밀리의 서재나 예스24 북클럽 같은 것을 결재하면 가격은 훨씬 더 저렴해집니다. 그러니 제가 발행하는 글이 오백 원이라는 건 결코 싼 게 아닙니다. 발행인으로서 두려운 게 정상이다, 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저는 겁이 많습니다만 항상 겁나는 일만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왜 이래야만 할까요. 더 무서운 것은 유료 구독자를 모집하는 일을 하다가 그래도 무료일 때는 봐주시던 분들까지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한 플랫폼에서는 유료 구독자 모집 예고를 한 후로 날마다 구독자 숫자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슬픕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아는 관계에도 영향이 올까 경계합니다. 사실 1호를 처음 시작할 적에는 현실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구독을 했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입니다. 그들이 브런치나 인스타처럼 제가 활동하는 글쓰기 공간에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해둔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두 번째 발행부터는 주변에 조금 말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이런 주제에 영업하려니 참 난감합니다.


제 발행물을 구독하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홍보 방법을 토론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연락도 해줍니다. 한 분은 한 유튜브 채널에 배너를 걸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미 마음으로 큰 힘이 됩니다. 혼자 하는 일이지만 외로울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바빠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득. 일테면 모의고사를 봤는데 기대보다 점수가 너무 떨어졌다, 싶을 때는 공부가 잘 안 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열심히 프로모션하고 연재물 준비하다가 구독 신청 현황을 보면 잠깐 외로워지는 겁니다. 물론 바빠서 오래 외롭지는 못하지만요. 그런데 주변에서 도와주니 뭔가 저만의 일인데도 묻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무서운데 외롭기까지 할 때 도와주는 사람은 정말 고마울 수밖에 없나 봅니다.


도와주는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여기저기 스스로 홍보도 좀 잘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망설여집니다. 랜선친구들한테는 말도 못 꺼내겠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창작자들이라서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데 그래도 말을 참 못 꺼내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그렇습니다. (반전 예고?)


태어나서 딱히 선행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기억나는 선행이 있는데요. 예전에 한 터미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군인에게 만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선행한 적이 없으면 그날의 날씨까지 기억이 날까요. 약간 흐렸습니다. 저에게 다가온 군인 아저씨(글쓴이 민방위 3년 차 주의)의 얼굴도 흐렸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있는 주변을 서성이다가 반드시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기 내어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만원을 건냈을 때 그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척 기뻐할 줄 알았는데 김이 좀 샜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일 좀 하는데 반응이 왜 저렇지? 했는데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쓸 때는 참 저렴한데, 받을 때는 다릅니다. 그것도 대가 없이 받는 경우라면 필히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다시 글을 파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저는 구독을 기획한 것이지 구걸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공짜로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상품(혹은 서비스)을 제공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래도 저에게 그냥 만 원보다 구독자의 만 원이 훨씬 더 무겁습니다. 그래서 편 당 오백 원의 원고를 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저는 상식적인 거래가 목표입니다.


이틀 전 총선이 있었습니다. 바쁘게 일한답시고 사전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점심 전에 슬리퍼를 끌고 가서 선거하고 왔습니다. 어제는 잘하겠다고, 뽑아달라고 외치던 후보자들이 각각 당선과 낙선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저의 한 표도 결과에 기여했습니다. 제 표가 잘못된 선택이었을지 아닌지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제 일을 했기 때문에 홀가분합니다. 이제 마음이 바쁠 사람은 당선자들일 것입니다. 저는 아무 대책 없이 표를 구걸하는 후보를 뽑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한 표, 한 표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보여줄 후보에게 한 표를 주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만 원도 한 표도 생각보다 무겁고 보기보다 큰 영향을 가진 셈입니다.


만일 <일단연재>를 구독하신다면 거기에 쓰신 마음과 시간과 만 원에 해당하는 만큼 그 이상도 아닌 딱 그만큼의 상품과 서비스를 돌려드려야 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쓰다 보니 정말 장문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온종일 원고를 쓸 때는 너무 막혀서 몇 장 못 쓰고 말았는데 퇴근 후 잠시 쓰는 '팔기 위한 글'은 이토록 많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분량이 말도 안 되게 길어졌기 때문에 이 글도 파는 일에 기여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주말이 끝나면 <일단연재> vol.2 구독자 모집도 끝이 납니다. 1호 발행과 2호 프로모션으로 노력했던 결과가 나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발행이 시작됩니다. 마지막까지 신경 쓸 일이 많은데요. 더 많이 신경 쓰고 싶습니다. 긴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요. 기회가 되면 또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평온하세요.




― 작업실(원룸) 월세날에, 이학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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