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 카카오 인턴에 지원한 대학생이 설문에 응해달란다. 무심코 지나치려다가 설문 주제를 확인하고는 어물쩍 답장을 쓴다. 마감 때문에 한창 바쁜 시기였는데도 A4 세 장쯤 되는 분량을 쓰고서야 답장을 끝냈다. 설문 주제는 브런치였다.
브런치는 선정된 작가가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독자에게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작가에게는 고료나 윤문을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다. 얼핏 블로그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글의 힘을 아는 사람과 글을 완성시키고픈 사람에게는 아끼는 단골 가게 같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낭만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많은 창작자가 매일 새로운 원고를 공개한다. 그러나 출간이나 강연 같은 소중한 기회를 얻는 이는 소수다. 긴 시간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브런치를 운영하는 카카오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인턴 후보에게 ‘브런치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할 만한 베네핏을 제안하라’고 요구했고, 나는 긴 답장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독자의 눈이 글을 완성시키는 순간과 오랜 성실함이 좌절로 변하는 장면이 매일 교차되는 그곳에서 내 마음은 자주 고장 난다. 브런치에 올라온, 지식과 경험, 감성이 담긴 글을 볼 때마다 ‘이 사람들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소중한 창작자를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모두가 잘 되는 세상은 없다. 목표가 같을 때 누군가의 성공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실패가 필요하다.
누구나 세상의 요구를 맞추지 못하거나 운이 따르지 않아서 좌절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아프게 희망을 접는 사람도 많다. 비상할 줄 알고 뛰어든 절벽에서 날지 못하고 고꾸라진 경험은 내게도 있다. 추락한 후 남은 것은 상처와 고통과 부채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해버리면 내가 겪은 모든 일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의미를 잃으면 그때부터 진짜 실패가 찾아온다. 생활과 일이 오염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다 시간을 함부로 버리게 된다. 이를 알고부터는 실패할 때마다 나를 혹독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잘 되면 좋지만 그러지 못해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누군가의 성공에는 누군가의 실패가 필요하다. 실패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전부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최선을 다해 기억하려고 한다.
나를 가장 과소평가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내가 아름답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색과 향과 기분이 달라진다는 것을 나는 조금 안다. 실패해도 나를 아끼면 다시 웃을 수 있음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말한다. 내 마음에 들어온 당신이 잘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그러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하다고. 그대라서 아름답고 지금 그대로도 눈부시다고.
어느 날 당신이 실패로 힘겨울 때는 목표로 살지 말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하길 바란다. 잘 사는 거 말고, 일단 사는 게 중요할 때가 우리에게는 곧잘 찾아오는데 그 순간을 이겨내야 또다시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그러다 꿈꾸고, 다시, 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쯤 실패가 그리운 날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