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힘에 겨울 때
한 시기에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한 시기에 자주 가는 곳도 있다. 대학 때는 한 포장마차에 자주 갔다. 이 동네에는 왜 정겨운 포장마차가 없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술집을 탐험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세련되지 않은 실내가 마음에 들었다. 억지로 꾸민 예스러움이 없어서 좋았고 음식도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오징어 초무침이나 고갈비 같은 안주는 첫입에 반했다. 그날부터 수년간 그곳에서 새벽과 밤을 팔아 추억을 얻었다.
작업실에 혼자 지내는 요즘도 혼자 찾는 단골집이 여럿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약수터에 가듯 5분 거리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떠 오고, 겨울에는 극장 앞 노점으로 붕어빵을 사 먹으러 간다. 단골이 되고 나면 상호만 들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과 분위기와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나를 충만하게 해준다. 가지 않아도 간 것처럼 마음이 정겹고 갈 수 없을 때는 그리워진다.
세상에 널린 게 가게인데도 단골집이 문을 닫는 순간은 서운하다. 자주 가던 포장마차나 카페가 문을 닫으면 ‘나는 이제 어디서 술을 마시고 어디서 커피를 사야 하나’ 하고 하나 마나 한 고민에 사로잡혀 우울해진다. 사람도 그렇다. 한때 마음을 주고받던 사람이 떠나면 내 마음 둘 곳 없어 허망해진다. 다른 사람, 더 좋은 인연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내 마음이 익숙한 마음을 찾을 때까지는 한동안 좀 아프다.
단골집이 사라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테다. 장사가 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몸이나 마음이 지쳐서 일수도 있다. 웹에 ‘글 가게’를 차려둔 나 역시 가게 문을 닫고 숨을 때가 종종 있는데, 마음이 너무 지칠 때마다 그랬다. 며칠, 몇 주, 심하면 몇 달을 내가 올린 글이나 관리하는 채널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회복하고 나서 오랜만에 출근할 때가 있다.
문을 열기 위해 글 가게로 들어서는데 그곳에 메모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작가님,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라고 적힌 댓글이었다. 연재하지 않는 동안에도 내게 들린 사람이 있다니. 아. 이래서 내가 글 가게를 하는구나, 싶어서 괜히 눈이 시렸다. 누군가의 따스한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왜 뒤늦을수록 슬픈 건지.
어떤 연말에는 책장 한편에 자리한 나의 책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며 메일을 보내준 이도 있었다. 나도 잊어가는 나를 발견해준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내게는 타인이 내게 전한 따스한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버릇이 생겼다. 필요할 때마다 단골처럼 그 마음을 찾는다. 한 번 새겨진 마음은 항상 거기 있어서 헤매지 않고 만날 수 있으며 그 마음은 매번 나를 충만하게 해준다.
살다 보면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지, 이대로 걷는 것이 내게 이로운지 헷갈릴 때도 많다. 가끔은 넘어지고 또 가끔은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날에 펼쳐 볼 나침반 같은 한마디가 내게 있다면 다시 길을 찾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겠다.
‘부디’로 시작하는 어떤 청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를 위한 청이 아니라 듣는 이를 위한 청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부탁이 그렇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부탁한다. 부디, 당신은 거기 있어 주길. 당신이 힘겨울 때 내 마음이 찾아갈 수 있게.
슬픔이 계절처럼 한 시기에 오래 머물면, 마땅히 끝에 놓여야 할 일들을 내 품으로 당기고 싶어집니다. 나는 고작 하나인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기를 은밀히 소망합니다. 비로소 모든 것이 끝이기를 바라는 그 순간에도 시간이 가고 아침이 밝아옵니다. 계절의 끝에 선 겨울이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듯이 끝과 시작은 같은 얼굴로 우리 앞에 섭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