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억할게요

by 이학민
(썸네일) 오래 기억할게요.png 오래 기억할게요


독립출판 도서를 펴낸 지 3년이 지났다. 이틀 뒤면 출간 3주년이 된다. 혼자 만든 책이라서 제작에 관한 기억을 나눌 이는 물론, 기념할 사람도 없다. 작년까지 그랬듯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생일이다.


책을 펴낸 사람도 책의 수명에는 관여하지 못한다. 상업 활동이 으레 그렇듯, 제품의 수명은 소비자가 결정하고 책은 독자의 손 위에서 생을 시작하고 마감한다. 누군가의 손 위에서 생을 마감했을 나의 책을 떠올리자면 3주년보다는 3주기라는 말이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유일한 유족으로서 내가 할 일은 고작 기억하는 일밖에 없을 테다. ‘고작’ 기억하는 일이니 이번에는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몇 해 더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질 테고 그러면 ‘고작’이 아닌 일이 될 테니까.


기억하는 것으로 추모를 끝낸 뒤에도 할 일은 많다. 새로운 소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두 번째 출간 계획을 세웠다. 첫 독립출판 도서를 낸 지 3년이나 지났으니 때가 되었다고 여겼다. 올해는 적어도 한 권의 책을 내겠노라 다짐하며 출간을 기획했다. 장르는 시집으로 정했다.


독립출판 도서에도 시 몇 편을 담았지만 ‘시’라고 부르지 못했다. ‘시 같은 글’이라고 적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시는 멀고 두려운 존재다. 그럼에도 시집을 내고 싶었다. 시는 다른 도서에 비해 많이 팔리지 않는다. 연하고 약해서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탄생만큼 소멸도 고요하다. 그런 면이 내게는 안전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시라면 실패조차 조금은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집 출간을 계획한 다른 이유는 시가 아니고는 내가 느낀 찰나의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모든 마음을 시로 전할 이유는 없지만 오직 시로 전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게도 있다. 평소 마음이 얇아지면 시인지 시가 아닌지 모를 짧은 문장을 적어두는 버릇이 있다. 그것을 모으면 시집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다. 겨울과 봄을 지나오는 동안 적어둔 문장이 있다. 그것을 열어보니 나의 무지만 가득 들어 있었다. 시 같지 않은 글을 모아봐야 시집이 될 리 만무하다는 것을 나는 왜 겪어봐야 아는 것일까.


여전히 나는 시집 출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 마음을 짓고 고치는 중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시처럼 남겨놓은 감정의 흔적을 세상에 꺼내놓고 싶다. 다음 책이 아니라 다다음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그때의 감정을,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다.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전하고 싶은 감정 하나쯤 마음에 두고 살 것이다. 쉽게 꺼내면 흔한 마음이 될까 봐 망설여지고, 그저 품에 두고 살자니 끝내 전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지는 그런 마음. 완벽한 타이밍은 없고 유용한 방법조차 저마다 다를 테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게는 그 마음을 오래 기억할 기회가 있다는 것.


품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마음이 있고 나눔으로 커지는 마음이 있다. 이 글로 마주 선 우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손을 잡아준 당신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한때 나를 살게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거리에서 시민을 인터뷰하는 방송이었다. 여름 풍경을 담은 화면에서 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사회자가 다가가 뭐 하시냐고 묻자 할머니가 말간 얼굴로 말했다.



해 피하고 있어요.



왜 그 말이 내게는 행복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렸을까. 할머니의 여유로운 표정 때문이었을까. 일상의 뙤약볕을 지혜롭게 피할 줄 아는 사람의 여유가 보인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무언가 발견한 사람처럼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할머니의 한마디를 보며 내가 느낀 편안함. 안온함. 여유 같은 것들을 언젠가 나를 읽을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흔적을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날의 마음에 관한 기억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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