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이었다.
“한 학기만 해보려고.”
선언처럼 통학을 결심했다. 그곳에 머물 자신이 없었다. 제법 먼 거리를 가야했는데 어쩌다 버스를 놓친 새벽에는 다음 버스를 타야 했고,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달려야 했다. 혼자는 아니었다. 언제나 내 옆엔 한 살 많은 누나가 있었다. 누나와 함께 열심히 뛰었건만 수업에 자주 늦었다. 땀을 말리며 수업을 듣다가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웃었다. 이유는 모른다. 내게 어렴풋이 떠오르는 웃음은 보통 그런 편이다.
누나와의 기억은 단출하다. 가끔 식사는 했지만 대부분 학교 안이었다. 흔한 술자리도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누나가 일하는 카페에 간 적은 있다. 누나는 내게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했다. 나는 하나라도 더 아끼길 바랐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였다. 근처에 볼일이 있었다며 누나가 찾아왔다. 캔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었다.
수선한 아침을 함께 맞던 그 버스 안에서 나는 종종 누나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누나도 이따금 내 어깨를 빌렸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여전히 차에서 잠들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몸이든 마음이든 기대는 게 불편한데 그땐 왜 그리 쉬웠는지. 동행자라서 그랬던 걸까.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걷는 사람 사이에는 마법 같은 동질감이 있다. 한 사람이 힘들어하면 한 사람이 어깨를 내주고. 또 한 사람이 주저앉으면 다른 한 사람이 그 곁에 앉아 숨을 고르는 다정한 마음이 있다. 동질감은 이해에서 비롯한다. 함께 걷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동행만큼 서로의 마음을 말없이 이해하는 순간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동행자는 특별하지만 동행자가 되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같은 곳을 보고 향하고 머물고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동행자일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아득한 끝을 향해 오늘을 걷는 게 일상이니까. 혼자 걷는다고 믿지만, 단 한 명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서로가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설명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이 공평한 하루의 시간을 함께 걷고 있으니까.
실내 노동자로 일하는 나는 이제 좀처럼 달릴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과 함께 길을 걷듯 살아간다. 그 길 위에는 함께 걷다 떠난 사람들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잠든 시간에만 글 쓸 수 있어서 아이가 없는 내가 가장 부럽다고 말하던 사람. 전공도 다르고 늦은 것 같아 두렵지만, 소설이 좋아서 글 쓰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고백하던 사람. 빛이 보이지 않아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마음 안에는 작가의 꿈이 빛날 거라고, 그것만큼은 억지로 끄지 않겠다던 사람…….
가끔 혼자 걷는 걸음이라 느껴질 때. 외로움에 지치고 아득한 목표에 좌절할 때. 그때마다 나는 마음으로 말한다. 빈 풍경에, 오래된 기억에, 그리고 나와 꼭 닮은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