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공연히 서글퍼졌다. ‘체구가 저렇게 작은 분이셨나’ 싶은 것이, 내가 아는 사람의 등 같지가 않았다. 평소 선생님은 자랑이 많은 분이었다. 자신이 한 일을 널리 알려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에 능숙했고, 그래서 타인의 평가나 인정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등을 보면서 나의 오랜 오해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희덕 시인은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에서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날 밤 내가 본 선생님의 뒷모습이 그랬다. 너무, 연약해 보였다.
하얀 빛을 어깨에 이고 걷는 그의 검은 등은 인정에 목마른 보통 사람의 뒷모습 같았다. 특별한 근거는 없었다. 그저 푹 처진 어깨와 힘없는 발걸음과 이따금 하늘과 땅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 쉬는 모습을 보며 그의 자랑이 외로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는, 주제넘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우리 삶에는 인정받지 못해 외로운 순간이 더러 찾아온다. 타인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인정받는 일은 공평하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겸손이 미덕인 세상에서 내가 한 잘한 행동을 직접, 먼저, 말하면 공격이나 무시를 받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자랑을 숨기는 게 익숙하고, 타인을 인정해주는 일에도 서툰 것인지도 모른다.
칭찬 앞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칭찬을 머뭇대는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자주 마주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칭찬해주며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 사소한 장점들을 일러주면 좋겠다. 흔히 칭찬이 잦으면 입바른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칭찬 하나가 사람의 마음 안에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 씨앗은 어떤 날에는 위로가 되고, 어느 날에는 도전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건넨 칭찬 한마디가 다음 글을 쓰는 동력이 되고, 오늘도 수고했다는 인정 한마디가 긴 하루의 뿌듯함을 준 적이 내게도 많다. 그래서인지 칭찬에는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사소한 장점이라도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탐정처럼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아도 누구나 칭찬 거리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어서 어렵지 않다. 적어도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그랬다. 이렇게 한 줄로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칭찬할 수 있을 만큼 칭찬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제는 친구의 앞머리가 이상하다며 놀렸고, 성격 급한 지인의 행동을 지적하고 말았다.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먼저 찾고, 자랑거리보다 지적할 거리에 더 빨리 반응해버린 것이다. 스스로 칭찬을 잘한다고 자랑한 내가 칭찬보다 지적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자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지적이나 장난 섞인 비난 대신 칭찬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야 내 뒷모습에 담길 허허로움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당신도 기억해주길. 칭찬은 가능한 헤프게. 스스로 먼저 자랑하기 전에. 어차피 돌아서면 금방 연약해질, 나에게나 남에게나.